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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5
주택은 건축일까
글 박성호 정리 이세정일본의 건축 전문 월간지 ‘신건축/주택특집(新建築 住宅特集)’에 과거의 한 일화가 소개된 적이 있다. 건축가들이 모인 작은 파티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김수근 선생의 동경대 대학원 동기생이자 친구이기도 한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라는 대선배 건축가가 이런 화두를 던졌다.“주택은 건축인가?”그보다 선배이자 주택 설계 활동을 주로 해 온 시노하라 카즈오(篠原一男)는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버렸고, 이토 토요오(伊藤豊雄) 등 남은 후배 건축가들은 논쟁을 계속했다. 훗날 그 일을 전해들은 한 건축가가 자신의 해석을 더한 글을 잡지에 기고하게 된다.“2000년 이전에는 그나마 공공건축의 현상공모가 사회에 새로운 건축의 모습을 제시하는 희망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변했고 지금의 공공건축 현상공모는 이해하기 쉬운 제안으로 어떻게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 경쟁하는 장으로 변모해 버렸다. 이런 시대에 어쩌면 ‘주택’만이 건축주(특정 고객)의 합의를 얻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건축가가 의도한 공간을 실현하는 ‘설계 사상의 순수한 표현의 장’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 고객과 그 가족에게만 초점을 맞춘 배타적인 공간, 혹은 너무나 특수한 해답은 과연 시대를 초월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건축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건축가는 문장 속에서 ‘배타적인 공간’이나 ‘너무나 특수한 해답’이라는 표현을 들어 주택 설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이질감을 금할 수 없었다.‘주택이 특정 고객의 합의만 얻을 수 있다면 설계 사상의 순수한 표현의 장이 될 지도 모른다’는 고백은 스스로 자백한 건축가들의 오만불손이자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 같은 발언을 보면서 우리나라 건축가의 공동 의식, 시대정신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흔히 ‘전문직’하면 변호사나 의사를 떠올린다. 그들은 고객이 가지고 있는 유ㆍ무형의 자산, 즉 고객의 건강이나 권리,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전문 지식을 발휘하고, 그 역할에 대한 노력의 대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떨까? ‘사(士)’ 자가 붙는 ‘건축사’는 전문 직종인데 반해, ‘가(家)’ 자로 끝나는 ‘건축가’는 화가나 소설가, 음악가처럼 순수하게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인 것일까?주택 설계는 작업의 프로세스와 거래의 형태를 보면 오더메이드(맞춤 제작)와 유사하다. 해당 브랜드, 혹은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에 매력을 느낀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더메이드의 경우에도 고객의 취향과 희망사항은 매우 중요하고 우선시된다. 디자이너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집중한다. ‘디자인 철학의 순수한 표현의 장’으로 쓰라고 고객이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세상의 이치를 초월하고 건축가만이 특별한 존재로 있어도 되는 이유가 있을지, 건축가라는 업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당연히 주택도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삶을 위한 그릇’이라는 용도에 충실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건축이다. 각각의 건축주가 꿈꾸는 삶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하기에 결과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주택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듯 개별적으로는 전혀 사회성을 가지지 않는 주택들도 시대나 기후, 지역, 민족 등 세그먼트로 나눠서 본다면 일정한 특징을 지니기 마련이다. 이러한 특징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정된 재화와 실현 가능한 기술을 동원해, 그 시점에서 본인이 생활하기에 최선이라고 믿는 집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의 바람은 늘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절실한 바람 앞에서 건축가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욕심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설계자는 건축주에게 믿을 수 있는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 건축주의 희망 사항을 잘 듣고, 해당 필지와 주변 환경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제한된 조건 속에서 건축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배치, 동선 계획, 입면 및 평면 계획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보다 합리적이고 저렴한 방법, 같은 비용이면 보다 내구성이 좋은 방안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옳다.혹여 건축주가 그런 조언을 듣고 검토를 한 후에도 “그래도 이렇게 하고 싶어요”라고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 답인 것이다. 건축주는 본인의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추후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 지게 된다.물론 설계자는 조언자이지 건축주의 하수인은 아니다. 건축주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열악한 구조 강도 등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 특정 자재의 잘못된 사용에 따른 건강에 대한 우려, 혹은 장비 등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 등이 예견될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이의 제기를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특정 집단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적인 상징을 사용하려는 등 타자에게 심리적 모욕감이나 혐오감을 줄 가능성이 높은 디자인에 대해서도 건축주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재고를 독촉하는 것이 직업윤리 측면에서 옳은 태도가 맞다. 아무리 건축주가 ‘싸게 싸게, 대충’을 강조해도 H빔으로 지탱해야 하는 구조물을 C형강으로 대체해서는 안 되고, 아무리 건축주가 ‘멋진, 심플한’을 요구해도 위태롭게 얇은 기둥으로 건물이 붕괴되고 옆집을 덮칠 우려가 있다면 그런 건물을 설계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명하다.또한 건축주가 어디서 들은 정보로 ‘우레탄 단열재로 내단열을 하겠다’고 희망한다면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외단열로 설계를 변경하거나 다른 단열재를 추천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일본의 명문대 교수이기도 한 어떤 건축가는 타원형의 노출콘크리트 주택을 설계하면서 내단열로 우레탄을 사용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의 위험성보다 ‘설계 사상의 순수한 표현’이 더 중요한 것일까? 이런 사례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에 건축가가 스스로 의도한 공간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 사상의 순수한 표현의 장’을 가지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남아 있다. 스스로가 건축주가 되어서 건축가의 자택을 계속 지으면 된다. 세계의 많은 선배 건축가들이 그렇게 살았듯이 ‘설계 사상의 순수한 표현의 장’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박성호 aka HIRAYAMA SEIKOU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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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빵 만드는 남자 ‘베이킹파파’
빵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빵을 만들게 된 남자. 도심 속 아파트와 빌라를 오가던 그들의 이야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 전원주택에서 다시 시작된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베이킹은 고된 작업이지만 그래도 작업실에서 빵을 만들 때가 가장 즐겁다.여기,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심이 아닌 경기도 양평의 가장 끝자락에 베이킹 공방을 연 남자가 있다. 동네 이웃조차 몇 안 되는 이곳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첫 베이킹 클래스를 시작한 그는 바로 누적 방문객 930만 명을 자랑하는 베이킹 전문 블로그의 주인공 ‘베이킹파파’다. 상세한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담은 친절한 베이킹 레시피와 소탈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온라인에서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온라인 쇼핑몰 창업 같이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아내와 함께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시골 전셋집 베이킹 공방’이었다. ▲ 따뜻하고 밝은 거실 ◀ 베이킹파파가 만든 바게트와 식빵들 ▶ 소품 역시 베이킹과 관련된 것들로 가득하다. 꿈도 없고 돈도 없던 시절, 아내가 제안한 베이킹은 오랫동안 방황하던 그에게 뒤늦게 찾은 직업이 됐다. 그전까지는 고정된 직장도 없이 ‘반 백수’로 살았고, 아내가 집안 살림을 도맡으며 가장 역할을 했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남편 용돈도 살뜰히 챙기는 씩씩한 아내였지만,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니 살림은 점점 기울었고 급기야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해준 아파트마저 넘어갔다. 계속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점점 더 작은 집으로 옮겨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좁은 곳이 더 아늑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아내가 철부지 남편에게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질문이 ‘빵 만드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시큰둥하게 답했던 그는 살았던 곳 중 가장 열악하고 낡은 집, 좁은 방에서의 어느 날, ‘한번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지나고 나니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그게 마지막 물음이었다고. 이번에도 거절하면 더 이상은 묻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웬일로 제가 순순히 응했던 거죠.” 서른넷, 늦깍이로 시작한 베이킹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사실 처음엔 그저 ‘빵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내가 직접 만든 빵 한번 먹게 해준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취미 삼아 학원에 다닌 지 두 달 만에 제과제빵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고, 혼자 연습하다 일을 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 싶어 빵집에 취직했다. 거기서 받은 80만원이 결혼 6년 만에 아내의 손에 처음 쥐여 준 월급이었다. 그 후 일반 제과점 서너 군데, 뷔페에 디저트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며 6년 정도 꾸준히 일했다. 빵 만드는 일이 즐겁기는 했지만, 새벽 6시 출근에 밤 9시 퇴근이 기본인데다 끊임없는 노동에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할 때면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달래준 것이 바로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였다. 휴일에는 직접 만들었던 빵의 베이킹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해 올리고, 같은 공감대를 가진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에게 더 맛있는 빵을 만들 레시피와 유용한 팁을 알려주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했고, 아내는 그런 그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줬다. ◀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림 ▲▼ 베이킹파파가 만든 빵과 쿠키들 베이킹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건, 가혹한 업무에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가 온 팔꿈치와 어깨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빵집을 내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때 아내가 살림집과 겸한 공방을 운영해볼 것을 넌지시 제안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잠시, 블로그를 통해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이렇게 큰 전원주택에서 공방을 할 생각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어요. 허름한 농가주택이라도 얻어서 일을 시작할까 했는데, 이 집의 주인 ‘김준찬 사장님’을 만나고 일이 많이 풀렸죠.” 작은 빌라나 아파트를 얻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음이 문제였다. 결국 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집을 알아봤는데, 눈에 차는 집을 구하려니 돈이 모자라고 예산에 맞는 집은 너무나도 볼품없었다. 맥이 풀리던 차,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교적 저렴한 전세금으로 나온 전원주택을 보게 됐고 두 사람은 집을 직접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넓은 마당과 두 개의 다락방이 있는 아늑한 집은 부부 마음에 쏙 들었다. 빚은 내지 말자고 약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조금 모자라는 돈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집을 계약했다. 작년 6월, 드디어 이사를 마치고 거실 빽빽이 공방 수업을 위한 작업대와 베이킹 기구들을 들여놓았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거실을 본 사장님은 이래서 사람이 살 수 있겠냐며 먼저 작업실 증축 공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미국에서 35년 동안 집을 지은 경력으로 이 집 역시 손수 지은 사장님의 고마운 제안이었다. 경제적으로 그럴 여력이 없다는 얘기에도 재료비만 대고 그가 조수를 하면 공사를 직접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나무로 뼈대를 올려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과정은 베이킹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증축 공사 때문에 공방 오픈 일정이 늦어져,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비를 맞으며 지난여름 내내 작업에 집중했다.“마음이 급해서 매일 밤늦게까지 사장님을 끌고 다녔어요. 저보고 ‘악마 같은 놈’이라고 하셨죠(웃음). 그래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집 앞에 오셔서 막걸리 한 잔으로 작업을 시작하곤 했는데, 세입자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집주인은 또 없을 거예요.” 공사가 끝난 후 집의 뒤편에는 10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작업실이 생겼다. 그가 만든 빵을 맛본 사장님은 마당 한쪽에 돌가마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작년 9월 무사히 공방을 오픈했고 블로그에서 친목을 다진 ‘베이킹당’ 사람들과 함께 정모도 가졌다. 베이킹 선배들도, 작업실을 만들어준 사장님도 이 먼 곳까지 누가 베이킹을 배우러 오겠냐고들 했지만, 문을 연 지 석 달간 방문자만 700명을 넘어섰고 개설하는 수업은 연일 마감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내가 사진과 동영상 촬영, 프로그래밍을 맡고 틈틈이 공부한 영어로 그가 직접 글을 써 제작한 애플리케이션 ‘all that baking’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8주 동안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반 수업에 들어간다. 매번 새로운 빵을 만들고 연구하여 커리큘럼을 짜기 때문에 공부할 양도 방대하고, 매사에 완벽을 기하는 꼼꼼한 성격의 아내와 부딪힐 일도 잦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와 블로그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블로그에서 저를 좋아해 주시던 분들이 실제로 와서 수업을 듣고 실망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더구나 이번 수업에는 부산에서 오시는 분이 세 분이나 되거든요.” ▲ 곧 마당에 초록 잔디가 돋아날 공방 전경 ◀ 거실 창가에서 아내와 보내는 오후 ▶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사장님과 함께 얼마 전 그는 유정란으로 베이킹을 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으로 닭장을 만들어 병아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날이 풀리면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마당도 손질해 수강생들과 야외에서의 바비큐도 즐길 생각이다. 또, 늘 속만 썩였던 아내의 얼굴에 더 환한 미소가 번질 수 있도록 일등 남편이 될 예정이기도 하다. 막막하고 어두웠던 지난 삶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나둘 씻겨 내려간다. 더 행복하게 빵을 굽고 사람들과 따뜻하게 부대끼며 언젠가는 꼭 ‘베이킹파파’라는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드는 것. 두 사람은 오늘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217-29 031-772-3301 www.bakingpapa.com<p class="0" style="
전원속의내집
조회 1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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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조작된 정보의 바다 속에서 감춰진 진실을 찾는 여정
언젠가 건축주와 함께 황토대리석을 취급하는 한 업체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회사 대표는 “황토대리석의 흡습성을 보여주겠다”며 분무기로 대리석에 물을 뿌렸다. 물은 황토대리석에 잘 스며들었다. 그러고 나서 “황토대리석에서만 원적외선이 나온다”며 옆에 있던 옥 덩어리와 함께 같은 시간 동안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시켰다. 그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이렇게 잘못된 상식들이 만들어지는구나!’이 퍼포먼스의 결과는 뻔했다. 옥은 그대로지만, 황토대리석은 따뜻해진다. 그 이유는 수분 함량과 가열 방법에 있다. 전자레인지는 물체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 자체의 분자 활동을 촉진시켜 가열하는 조리기구이다. 건조된 상태의 결정체인 옥은 가열될 수가 없고, 분무기로 가습한황토대리석은 당연히 가열이 된다. 이 실험은 원적외선의방출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작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위 일화처럼 건축업계에서도 왜곡되고 조작된 이야기들이 마치 상식처럼 유포된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실험용 쥐를 통해 확인된 콘크리트가 인체에 주는 악영향’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내용은 이렇다.‘1987년 시즈오카 대학에서 나무, 철, 콘크리트로 만든 3종류의 상자에 실험용 쥐를 각각 넣고 사육실험을 했는데, 그 상자에서 태어난 어린 쥐들의 생존율은 나무 상자의 경우 약 85%, 철로 만든 상자에서는 약 41%, 콘크리트 상자에서는 약 7%이었다.’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콘크리트주택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요. 집을 지으려면 역시 목조주택이 최고입니다.”왜 그렇게 단언하느냐 하면, 일본에서 봐 왔던 많은 목조주택 관련 업체들이 계속 이렇게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신규고객들에게 뻔한 시나리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에 조금 다가가 보자. 실제로 실험의 목적과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위에 거론된 부분만이 발췌되어 회자되고 있다. 생존율에 대한 진실은 이렇다. 위와 같은 결과는 평균기온 25℃라는 환경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뿐이었고 평균기온 20℃에서는 거의 모든 아기 쥐들이 죽었다. 평균 기온 30℃ 환경에서는 거의 모든 아기 쥐들은 살아남았다. 또한 상자의 재질로 인한 발육상태의 차이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실험을 실시한 담당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상자의 재질에 따른 열전도율 차이로 체온이 뺏긴 것이 원인이라고 사료된다.”이 실험에 관한 논문 전체를 일본어 원본으로 읽어봤지만, 거기에는 콘크리트의 ‘독성’이나 ‘유해성’이라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실험의 스폰서는 시즈오카현의 목재협동조합 연합회였다. 그들에게는 실험 전체의 결과보다 ‘나무 85%, 철 41%, 콘크리트 7%’라는 생존율의 차이만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의 농간(혹은 정보조작)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된 ‘콘크리트의 역습(부제 : 콘크리트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이란 책이다. 저자인 ‘후나세 순스케’가 제시하는 대안은 너무도 어이없게 간단명료하다. 저자는 내부 마감을 나무를 비롯한 친환경 자재로 바꾸고 노출콘크리트가 인체에 직접 닿지 않도록 간단하게 조치하는 것만으로 콘크리트의 단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콘크리트주택 중에서 인체에 콘크리트가 직접 닿는 부분이 몇 퍼센트나 될까? 거주자들이 콘크리트 구조체에 직접 누워서 잠을 자고 살을 맞대고 앉아 밥을 먹을까? 이런 근본적인 논리의 모순조차 생각하지 않고, 쥐가 많이 살아남은 나무는 좋고, 많이 죽은 콘크리트는 나쁘다는 식의 흑백논리가 마치 상식처럼 재생산되고 있다. 열반사단열재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열반사단열재를 제조 판매하는 이들은 심하게는 이런 설명으로 판촉을 한다.“주택에 가해지는 열전달 부하 중 복사열이 70%인데, 이를 막지 못하면 단열이 30%밖에 안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집의 지붕과 외벽에 가해지는 열 부하 중에서 복사열이 상당량을 차지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부피단열재(EPS, XPS, 그라스울 등)로는 그 복사열을 전혀 막을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단열재 외부에 도달한 복사열이 결국은 전도열로 바뀌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부피단열재는 복사, 대류, 전도의 모든 열에 대해 효과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열반사단열재는 복사열에 대해서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옳다. 열반사단열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에 가해지는 열 부하의 70%가 복사열이고 제대로 시공된 열반사단열재의 반사율이 50%가 나온다면, 그것은 집이 감당해야 하는 열 부하의 35%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열반사단열재가 부피단열재를 대체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예비 건축주들이 책이나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이 제대로 된 진실인지, 조작된 허위사실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본인 스스로가 조작된 정보의 1차 피해자인 줄 모르고, 이를 제3자에게 다시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진실을 비추어주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는 등대와 같은 원칙, 혹은 거짓말탐지기처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지침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에 넘치는 많은 정보 중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 우선은 스스로 진위 여부를 분석해보려는 노력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어미 새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무조건 받아먹고 있다면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난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가 믿어 왔던 상식은 과연 ‘진실’일까요?”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전원속의내집님에 의해 2016-03-15 14:39:52 HOUS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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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좋은 이웃을 만나는 방법,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지난 칼럼에서 나는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에 앞서 ‘상상하기’를 권했다. 그들 중 일부는 상상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 고민하던 차에 상상의 힘을 더해 집짓기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상상이 완성되기 전, 건축주가 꼭 알아야 할 작은 원칙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떤 이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충돌하느냐에 따라 게임 혹은 거래의 유형을 나누는 분류법이 있다. 바로 Zero sum, Plus sum, Minus sum이다(sum은 ‘합계’라는 뜻). Zero sum(제로섬)은 당사자 간의 이해득실의 합계가 제로인 경우를 말한다. 누군가가 이익을 가져 가면, 반면에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의 손해를 입기 때문에 합계는 늘 제로가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거래는 제로섬 게임의 유형을 지닌다. Plus sum(플러스섬)이란 당사자 간의 이해득실의 합계가 결과적으로 플러스(이익)인 경우다. 플러스섬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손실로 연결되지 않는다. 상대와의 협조를 통해서 서로의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각자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협조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소위 말하는 ‘윈-윈 게임’이라는 것이 이 같은 분류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Minus sum(마이너스섬)이다. 당사자 간의 이해득실의 합계가 결과적으로 마이너스(손해)인 경우를 말한다. 서로가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둘 다 망하는 식으로,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패자만 남는 싸움이다. 이런 구도는 가능한 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 가지 유형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이해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나에게 앞으로 평생 동안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 그 거래의 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유형을 선택할 것인가?” 현명한 그대의 선택은 100% 플러스섬 유형일 것이다. 그것만이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약자나 패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한 작은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상상하는 삶의 모습, 그리고 그 삶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가는 설계라는 작업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원칙이 ‘플러스섬’이다. 플러스섬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까지 펼쳐 온 상상의 날개에 ‘내 가족’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이제 등장 인물에 이웃을 포함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웃과 함께 어떻게 살면 기분이 더 좋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웃들도 당연히 하고 싶겠지?” “내가 입기 싫은 피해는 이웃들도 당하기 싫겠지?” 이런 상상을 통해서 설계 작업을 진행한다면 그대는 플러스섬의 원칙을 지키며 함께 살 수 있는 행복한 집 짓기에 성공할 것이다. 택지개발지구처럼 새롭게 개발된 단독주택 단지를 다니면서 제로섬의 원칙으로 설계된 집들을 많이 본다. 먼저 자기 집만 지었을 때만 생각하고 설계한 집은, 옆집이 들어서면서 그 장점을 모두 잃어버린다. 어떤 집은 주변에서 아예 욕 먹을 각오를 한 듯 우뚝 솟아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모두가 순간적인 만족감에 눈이 멀어 자기 욕심에 집을 짓는다. 결국 마이너스섬의 악순환에 빠져 서로 흉물이라고 탓을 하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집들을 보면 너무나 슬프다. 남을 이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집주인들은 본인이 마이너스섬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그들에게 ‘단독주택의 삶’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단독주택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이웃을 잘 만나야 해.” 이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자연발생적으로 좋은 이웃을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행복한 집 짓기를 위해서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기로 마음먹고 행동해야 한다. 일전에 한 전원마을에서 동시에 네 채의 집을 설계한 적이 있다. 1년 후, 그 건축주의 소개로 옆 두 개 필지에 설계 작업을 다시 맡게 되었다. 새로운 필지의 건축주와 미팅을 마치고, 기존 건축주들 중 한 분을 안부차 방문했다. “소장님, 저 집은 어떻게 짓겠다고 하나요? 저 집에 가려져서 좋은 경치를 못 보게 될까 봐 걱정이네요.” 모든 건축주들의 고민은 늘 같다. “선생님, 기억 안 나세요? 처음 이 집을 설계할 때 설명 드렸잖아요. 나중에 저 필지에 집이 지어져도 가장 도로 쪽에 붙여도 여기까지 밖에 못 오니까, 이렇게 배치하면 앞으로 걱정할 것은 없다고, 그렇게 결정한 거잖아요.” “어? 그랬던가? 그럼 나 이제 걱정 안 해도 되는 거네(허허)?” 그대에게 묻는다.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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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차(茶) 문화공간, 구도심 골목 안 ‘루치아의 뜰’
‘스텔라’는 이 집에 살다 떠나간 할머니의 세례명, ‘루치아’는 집의 새로운 주인 석미경 씨의 세례명이다. 같은 성당에 다녔지만 만난 적은 없던 두 사람은 운명처럼 ‘집’이라는 또 하나의 교집합을 만들게 된다. 지금 전하는 이야기는 ‘스텔라의 뜰’이 ‘루치아의 뜰’이 된 사연이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텅 빈 집들만 남은 쓸쓸한 구도심, 밤이면 불량학생들이 모여들던 문 닫은 극장 뒤 좁은 골목에 스텔라 할머니가 살던 집 한 채가 있었다. 파란색 낡은 철문과 소박한 뜰이 있는 이 집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동안 비어 있어 폐허나 다름없었다. 담장은 무너져 내리고 사람 손을 탄 지 오래된 살림살이가 나뒹굴고 있었지만, 석미경 씨는 이 집을 만나는 순간 발을 뗄 수 없었다. “첫눈에 반했어요. 넓은 마당도, 집 앞 골목도 예쁘고, 옛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도 마음에 쏙 들었지요.” 취미로 오랫동안 차(茶)를 공부해온 미경 씨는 나이 오십이 넘으면 자신만의 차 공간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가족과 상의 끝에 이를 실현할 수 있게 됐고,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공주 시내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에 차는 집을 찾을 수 없었고, 그러던 중 스텔라 할머니의 집을 만나게 됐다. 약 40평의 대지에 방 두 칸, 부엌 한 칸, 다락이 있는 10평 정도의 집이었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 안의 다 쓰러져가는 집을 도대체 어쩌려고 사냐고들 했지만, 그녀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조용한 구도심의 정취가 오히려 좋았고, 집은 손을 보고 뜰을 정리하는 정도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 마당과 한옥 기둥, 콘크리트 기와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루치아의 뜰 ◀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겨울 풍경 / ▶ 아담한 부엌에서 차를 준비하는 미경 씨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대문에 달린 명패를 보고 같은 성당에 다니던 ‘스텔라 할머니’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집은 50년 전, 스텔라 할머니의 남편이 직접 나무를 깎고 기둥을 세워 3년 동안 지은 집이다. 문틀 하나에도 할아버지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기에 할머니는 굳이 홀로 이 집에 남아 여생을 보냈다.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집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아들이 집을 팔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에 미경 씨는 집을 허물지 않고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둘 것이라는 뜻을 전했고, 2012년 겨울, 마침내 ‘스텔라의 뜰’은 ‘루치아의 뜰’이 됐다. 하지만 집을 고치는 일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근처 시공팀 서너 곳을 찾아 상담해봤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는 것이었다. 새로 지으려던 것이면 애초에 이 집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비용 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니 새집을 짓는 것이 합리적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경 씨는 잡지에서 우연히 임형남 건축가의 글을 보게 됐다. 작은 집과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자신의 마음과 똑 닮아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후에 다른 책도 찾아 읽으면서 노은주, 임형남 부부가 화려한 이력의 유명 건축가라는 것도 알게 됐다.▲ 3년 간 방치되었던 고치기 전의 모습 ▲ 포근함이 느껴지는 루치아의 뜰 입구 “집을 찍은 사진을 담은 USB를 가지고 서울에 있는 건축사사무소에 직접 찾아갔어요. 버스 안에서 부디 이분들이 우리 집을 귀하게 여겨주시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내로라하는 유명 건축가가 이 작은 집을 고치는 일을 과연 맡아줄까 걱정도 했지만, 막상 만나서는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계획했던 예산안에 설계비가 추가되었지만, 사실 건축가를 만나는 순간 미경 씨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건축가의 생각과 설계 작업에 대해 당연히 지급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했고, 건축에 문외한인 자신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기도 했다. 공주에 내려와 실제로 집을 본 임형남 건축가는 오래된 골목과 집의 모습에 연신 감탄했다. 마치 이 집이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리고 그는 옛 모습을 최대한 간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을 고칠 것을 제안했다. 미경 씨가 그토록 기다리던 말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가장 귀한 인테리어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설계를 진행하던 그 3개월이 참 좋았습니다.”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고 작년 여름 두 달을 꼬박 집을 고치는 데 매달렸다. 기본적인 구조는 건드리지 않되, 남북으로 긴 대지 형태에 따라 동향으로 지어진 집에 햇빛을 더 많이 들이기 위해 남쪽 벽면을 트고 창을 크게 냈다. 막혀 있던 천장도 시원하게 터서 대들보와 서까래를 노출해, 열 평 남짓한 집이지만 답답하지 않게 만들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작업하기 위해 보강과 같이 꼭 필요한 것들만 하고, 조경 등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들은 미경 씨와 남편이 직접 하기로 했다.“남들은 집 안에서 오르내리는 일이 힘들고 번거롭다고들 하지만, 그녀는 일상 속에서 이런 여유와 리듬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방에 누우면 서툰 솜씨로 다듬어 매끄럽지 않지만 그것조차 정겨운 대들보와 기둥이, 부엌에서는 파란색 수도 펌프가 있는 예쁜 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텔라 할머니가 쓰던 살림살이들은 미경 씨의 손을 거쳐 화분이 되거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탄생했다. 자개장롱의 문짝은 다락방에 놓인 테이블이 되었고, 삭아 내려앉았던 툇마루는 선반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할머니의 옷장에서 나온 광목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고, 할머니가 쓰던 풍로에는 장미꽃을 심어 뜰에 놓았다. 집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지난 세월과 이야기는 이렇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녀는 앞으로 이곳에서 손님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올봄에는 마당에서 천연염색도 하며 다양한 문화강의를 이어갈 생각이다. 그렇게 이 집에는 스텔라 할머니의 세월 위에 루치아 미경 씨의 삶이, 또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 선반, 화초를 심은 그릇, 아리랑 성냥, 소품으로 남겨둔 아궁이와 가마솥까지 스텔라 할머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남향으로 창을 내어 종일 햇볕이 따뜻한 부엌 루치아의 뜰 충남 공주시 중동 171-2 / 041-855-2233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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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하우스에세이 / 상상을 통해 마주하는 집에 대한 진실
글 박성호 구성 편집부 칼럼을 맡아 그 처음을 ‘어떤 글로 시작해야 좋을까?’라는 고민을 잠시 해봤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단어가 ‘imagine’이었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아마도 지금 건축주이거나, 앞으로 주택을 짓고 사는 것을 꿈꾸는 예비 건축주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IMAGINE” 상상해 보세요. 그대들의 꿈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림 같은 예쁜 집’이나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을 갖고 싶어서, 도심의 탁한 공기나 교통 체증, 층간 소음, 일상 속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한 절실한 선택일 수도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이유들은 행복한 집짓기나 그 집에서 누리게 될 삶의 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집을 지은 건축주들은 입주한 그 날부터 고민하거나 후회하기 시작한다. ‘이게 아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데 어떻게 하지?’ 이렇게 되어 버리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집’이라는 것은 그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원했던 무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마법의 상자’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집은 사는 이의 삶을 담는 ‘그릇’일 뿐, 집을 짓고 사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정중히 권하고 싶다. “IMAGINE” 상상해 보세요. 어떤 곳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아이들 혹은 가족, 친구나 이웃들과 함께 어떤 삶의 풍경을 그려나가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대들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삶의 모습, 즐거운 일상의 윤곽이 잡혔을 때, 비로소 행복한 집짓기가 가능하고 주택에서의 행복한 삶의 문이 열린다. 그렇게 그려진 삶의 모습을 잣대로 세상을 다시 본다면, 거기에는 지금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는 마냥 예쁘고 멋있게만 보였던 집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속 집들의 디자인이나 공법이 우리나라 기후나 여건에 잘 맞는지, 나와 가족의 생활 패턴에 적합한지 생각하게 된다. 멋은 없지만 쓰임새가 좋은 디자인인지, 아니면 멋있게 보이기 위해 쓰임새를 포기한 디자인인지 구별하는 눈이 생긴다. 이것이 첫 번째 진실이다. 아마도 그대들은 새집에 있으면 좋을 것들에 대해 많은 유혹들과 싸웠을 것이다. 실상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과 ‘꼭 필요한 것’을 가늠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새로운 잣대는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그대들에게 꼭 필요한 우선순위를 알게 되면 그동안의 깊은 고민은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는 두 번째 진실이다. 하나 더, 집짓기를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함께하게 될 설계자 (나는 건축가라는 단어보다 설계자라는 단어를 좋아한다)와 시공회사에 대해서도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대가 만나는 설계자들이 본인의 포트폴리오에만 관심이 있고 그대가 상상하는 삶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내놓는 결과는 뻔하다. 작품인양 멋부리기만 하지 삶의 그릇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설계자의 역할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다. 그대들이 상상한 내용을 공유하고 그대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실제로 그려주는 사람, 그것이 설계자가 할 일이다. 아울러 믿을 만한 정보가 없거나 부족해서 항상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는 시공자 선택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질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현실로 만들 생각이 있는 회사인지 생각해 본다면 답은 나오게 되어 있다. 이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그대에게 “그런 이야기는 저희한테 하실 필요는 없고요, 어떻게 지을 건지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지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과 방향을 찾고,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삼아, 선택과 판단을 반복해 윤곽을 잡아가는 일이다. 이때 그대가 상상하는 삶의 모습에 공감하고 그 느낌을 공유할 줄 아는 설계자와 시공자를 만나야 비로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 그대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아무리 열심히 봐도 보이지 않던 진실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권하는 것이다. “IMAGINE” 즐거운 상상을 시작할 때가 왔다고.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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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엔에스홈, 액티브하우스(Active House) 세미나 개최
외부에너지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액티브하우스(Active House) 세미나 액티브 하우스는 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한 집으로 다양한 장치나 설비를 건축물에 활용해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생산하여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주택입니다. 세미나를 통해 액티브하우스를 국내 목조건축에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 봅니다. ◆ 일 시 : 2015년 10월 21일(수) 오후 2:00 ~ 5:30 (3시간 30분) ◆ 장 소 : COEX (코엑스) 세미나실 301호 ◆ 주최/주관 : NS주택문화센터 <v:shape id="그림_x0020_4" o:spid="_x0000_i1026" type="#_x0000_t75" alt="주택문화센터 로고.jpg" style='width:87.75pt; height:19.5pt;visibility:visible;mso-wrap-style:square'> <v:imagedata src="file:///C:\Users\sunny\AppData\Local\Temp\msohtmlclip1\01\clip_image003.jpg" o:title="주택문화센터 로고"/> ◆ 후 원 : NShome(엔에스홈)<v:shape id="그림_x0020_5" o:spid="_x0000_i1025" type="#_x0000_t75" alt="후원 엔에스홈.jpg" style='width:78.75pt;height:18.75pt;visibility:visible; mso-wrap-style:square'> <v:imagedata src="file:///C:\Users\sunny\AppData\Local\Temp\msohtmlclip1\01\clip_image005.jpg" o:title="후원 엔에스홈"/> ◆ 강 사 :Henrik Norlander Smith / 송재승 / 최재철 ◆ 교육대상 : 시공사, 설계사무소, 시공자(빌더), 건축주 및 관심있는 일반인 ◆ 참가비 : 무료 (단, 사전신청자에 한함 / 교재제공) ◆ 참가방법 : NS주택문화센터(www.whcc.co.kr) 온라인 접수 ◆ 접수마감 : 10월 19일까지 선착순 마감 (100명) ◆ 교육일정 구분 시간 주제 및 강사 1부 13:30 ~ 14:00 접수확인(사전 온라인 신청자) 14:00 ~ 14:10 개회 (인사말) 14:10 ~ 14:40 천창 설계 상세 <송재승 원장, 건축사사무소 미추> 14:40 ~ 15:10 액티브하우스 적용사례 <최재철 소장, TCM 글로벌> 15:10 ~ 15:20 휴식 2부 15:20 ~ 17:20 액티브하우스와 솔루션(지속가능건축물) <Henrik Norlander Smith, VELUX> 17:20 ~ 17:30 질의응답 ◆ 문의 : NS주택문화센터 (Tel: 031-767-9400) - www.whc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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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8
2015 친환경건축축제 개최(10.29~11.1)
2015 친환경 건축 축제-ECO BUILD FESTIVAL경기도와 사단법인 국토환경지속성포럼에서 2015 친환경건축축제를 개최한다. 녹색건축과 관련된 세미나, 그린홈 짓기 체험, 친환경 재료 및 설비, 친환경 건축설계 및 시공사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일시 : 2015년 10월 29일-11월 1일장소 : 경기도청주최/주관 : 경기도, (사)국토환경지속성포럼1. 녹색도시건축세미나일시: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장소: 경기도청 신관 4층 회의실일정오전세션9:30 - 10:00등록10:00 - 10:30개회식10:30 - 12:00제1세션 : '친환경 도시건축 문화'이승일(서울시립대 교수)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도시발전 방향이규인(아주대 교수)세계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건축문화송하엽(중앙대 교수)친환경 건축과 랜드마크오후세션13:30 - 15:30제2세션 : '미래지향형 창의적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좌장 : 장준호(안양대 교수), 토론 : 문채(성결대 교수), 김미정(두꺼비 하우징 대표)이재준(수원시 부시장)수원 마을만들기엄상근(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제주시 원도심 재생김정빈(서울시립대 교수)네덜란드 창의적 도시재생15:30 - 15:45휴식15:45 - 17:45제3세션 : '패시브하우스와 제로에너지주택 어디까지 왔나?'좌장 : 최정만(패시브건축협회 회장), 토론 : 이태구(세명대 교수), 박성중(IPAZEB 부소장)이병호(KTC 수석연구위원)영월 에코빌리지 설계로 본 제로에너지 건물설계 과제홍성일(이둔 D&C 대표)패시브하우스 짓기와 살기이영종(명지대 교수)노원구 제로에너지 실증단지 설계17:45 - 18:00폐회2. 그린홈 짓기 체험일시: 2015년 10월 29일-11월 1일(4일간)장소: 경기도청 잔디마당내용1) 친환경 집짓기 체험2) 한옥 짓기 체험3) 흙미장 실습- 경량목구조 구조체 조립- 벽체 제작 실습- 창호 시공 실습- 마감 실습- 한옥 구조체 조립 실습- 흙벽 심벽치기 실습- 황토반죽 및 흙미장 실습3. 친환경 건축 설계, 자재, 설비 전시회일시: 2015년 10월 29일-11월 1일(4일간)장소: 경기도청 잔디마당1) 친환경 자재, 설비 전시2) 친환경 설계 및 시공사례 전시3) 경기도 추천단체 전시EBF 세미나 및 EBF 짓기 체험 등록은홈페이지 공지사항(www.lesforum.kr)등록 안내 게시글또는 BAND 'ECO BUILD FESTIVAL'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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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8
건축 대가들의 완전 정복 집짓기 톡!
장소 :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이평리 267-17 (주)삼익산업 - 세미나실일정 : 2015.10.17 (토) - 11:00 am ~ 15:00 pm참여건축가: 강주형. 김시원. 문영아. 서경화. 김동희. 이재혁. 홍재승 참석비 : 2만원 (참석비 전액 기부)참가문의 : 1588 -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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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파워블로거 / 황인구 씨의 ‘아키의 캠핑&건축家’
자연 속에서의 치유와 휴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 와서야 캠핑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황인구 씨는 이미 2008년도부터 캠핑을 취미로 시작해 블로그에 캠핑 후기와 정보를 포스팅해왔다.구성 조고은 http://myzip.blog.me자연 속에서의 치유와 휴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 와서야 캠핑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황인구 씨는 이미 2008년도부터 캠핑을 취미로 시작해 블로그에 캠핑 후기와 정보를 포스팅해왔다. 이후 3년 연속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고 지금도 하루 300~400명 정도가 꾸준히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그는 오토캠핑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부터 텐트, 취사장비, 랜턴, 동계캠핑 등 캠핑에 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포스팅한다. 계절별로 가기 좋은 캠핑야영지를 추천하기도 하고, 캠핑 후기에는 여행코스도 함께 추천해 캠퍼(Camper)들에게 매우 유용한 블로그다. 오토캠핑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던 2008년, 인구 씨가 캠핑에 입문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연에서 놀기 좋아해 아버지를 따라 낚시도 자주 다녔다는 그는 낚시를 즐기기보다는 텐트를 치고 요리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지금은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두 아들을 데리고 캠핑을 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는다. 작년 가을에 다녀와 후기를 남겼던 춘천 물레길 캠핑은 둘째가 스스로 걷기 시작하면서 처음 간 곳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아키의 캠핑&건축家’에는 캠핑뿐 아니라 건축에 관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지금은 건설회사에 다니는 그는 국내의 특별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자신이 직접 건축 과정에 참여했던 건축물 이야기도 종종 전한다. 재작년 한창 논란이 되었던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 공진현상 같이 생활과 밀접한 건축 관련 정보들도 볼 수 있다. 포스팅들에서는 언젠가 작은 아틀리에를 마련해 적은 비용으로 건축주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자연과 어울리는 전원주택을 설계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과 관심이 묻어난다. “6년째 블로그를 연재하면서 어떤 날은 방문자 수가 적어서 서운하기도 했죠(웃음).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그는 캠핑이든 건축이든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없는 순수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각종 미디어를 통해 캠핑의 좋은 점만 알려진 요즘, 캠핑을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캠핑의 장단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다. 이런 바람을 듬뿍 담은 ‘아키의 캠핑&건축家’엔 앞으로도 캠퍼이자 건축사, 두 아들의 아버지인 그의 삶이 차곡차곡 기록될 것이다. ◀ 캠핑을 떠난 황인구 씨 가족의 단란한 모습 ▶ 아들과 화롯대에 밤을 구워먹던 캠핑의 추억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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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경기도 이천 목공소 ‘가구장이 박홍구’
느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2005년 5월 ‘전원에 산다’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박홍구 씨네 가족.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다시 찾은 그곳에는 집 안 구석구석 그들의 지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 근 10년 동안 차근차근 변해온 집은 지금도 홍구 씨네 가족의 손길로 조금씩 다듬어진다. “여긴 매일 변해요. 오시는 손님들이 들릴 때마다 ‘어, 또 바뀌었네?’ 하시더라고요.” 이곳 경기도 이천에서 박홍구 씨네 가족을 처음 만났던 것은 2005년의 어느 봄. 이사한 지 6개월 남짓했던 그때는 집과 작업실을 가족의 손길로 새로 단장할 즈음이었다. 박홍구 씨의 아내 하경희 씨 말처럼 10년 가까이 느리게, 조금씩 변해온 집과 작업실. 그들의 집에는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문틀 하나에도, 흙벽돌 한 장에도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도 특유의 손때 묻은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대로다.▲ 이제는 정리된 마당 안에 황토 옷을 입은 집과 축사를 개조한 가구전시장이 한가롭게 자리잡아 지난 세월을 실감케 한다. ▲ 처음 이사 왔을 때 낡은 농가의 모습 그대로였던 박홍구 씨네 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홍구 씨네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다. 8년 전만 해도 집은 낡고 평범한 농가 한 채에 불과했다. 지은 지 50년이 다 되어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부부는 새로 짓지 않고 살면서 조금씩 손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집은 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흙벽돌집이 됐다. “집을 한 번에 싹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상황에 맞춰 조금씩 손보곤 했죠. 이제야 전체적으로 조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집을 고치는데 1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멀리 여행 한 번 안 가고 지낸 동안 집은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걸터앉아 쉴 수 있도록 원목 마루를 깔고, 벽에는 황토를 칠했다. 방에 문도 내고 창틀도 새로 달아 이제는 새집 같아졌다. 주방은 꾸미고 보니 낡은 수도관 때문에 물이 새어나와, 홍구 씨가 직접 배관을 해 아이 방과 위치를 바꿨다. 그래서 주방 천장에 바른 벽지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처음 해본 배관은 화장실 벽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마당에는 기왓장을 쌓아 담을 만들고, 논이 있던 자리에 흙을 부어 땅을 돋운 후 창고를 지었다. “아들 순신이도 많이 컸죠. 잡지에 나갔을 때가 다섯 살이었는데 지금은 열세 살이니까. 처음엔 이 나무도 요만했었는데.” 다섯 살 꼬마가 사춘기 소년이 된 세월만큼 앞마당의 나무도 훌쩍 자랐다. 경기도 이천으로 막 이사했을 때였다. 천둥, 번개에 태풍이 불던 날, 혹시 나무가 쓰러지거나 뿌리가 뽑힐까 봐 세 식구가 함께 부둥켜안고 버텼더랬다. 그 일로 조금 기울어져 자란 이 나무는 이제 평상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오랜 시간 천천히 그들의 손을 거친 집에는 흙벽돌 사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 한 그루마다 여유와 온기가 깃들어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포근하면서도 한가로운 공기의 흐름이 몸을 감싸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 손님을 반기는 대문 앞 우체통 ▶ 가족의 화목한 모습▲ 작업실을 확장하여 만든 전시장 ▲ 나무로 직접 만든 싱크대와 식탁이 있는 주방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작업장이에요. 마루가 깔린 작업장을 갖는 게 꿈이었거든요. 종종 마룻바닥에서 맨발로 활보하며 작업하기도 해요.” 그동안 홍구 씨의 작업장도 많이 변했다. 소를 키우던 축사를 개조한 이곳은 원래 하나의 공간으로 넓게 뚫려 있었다. 지금은 벽을 세워 공간을 나누고, 한쪽엔 공간을 새로 확장해 삼면의 창으로 볕이 잘 들어오는 전시장을 꾸몄다. 목수에게는 움직이는 동선이 중요하다. 평소 생활하며 하는 생각과 감정이 가구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작업 공간이 변해 온 사이, 그의 가구도 조금 달라졌다.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감성이 담겨 있다. 이천에 오기 전부터 해오던 목공 DIY 수업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일과 샘플 작업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남편이 만든 의자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사실 처음 4~5년 동안은 감성의자를 보고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저 사람 안에 뭐가 있는지 나도 모르는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남편이 의자를 만들던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지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경희 씨는 그런 남편과 가구의 변화를 곁에서 쭉 지켜봤다. 예전에는 주문을 받아 제작해주는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면, 지금 남편의 작업은 작품 활동에 가깝다. 내면적으로 외롭고 힘들던 시절 만든 ‘감성의자’는 각종 박람회에서 인정받고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미술품을 경매하는 서울옥션에도 등록되며 이제 그의 대표작이 됐다. “제 심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또 나무도 그렇게 두는 것이.”▲ 처마 밑에는 황토로 염색한 천을 달아 햇볕을 가리고, 창틀에는 화사한 색감의 꽃 그림을 그려넣었다. ▲ 아들 순신이와 박홍구, 하경희 씨 부부의 단란한 오후 ◀ 자귀로 나무를 다듬는 박홍구 씨 ▶ 왼쪽에서부터 감성의자가 변해온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와서 목수로서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해졌어요.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제가 아담한 방에 앉아 의자를 포근하게 안아 쥐고 자귀질을 하는 모습을 늘 상상해요. 죽을 때까지 온전히 손으로, 자귀로만 감성의자를 만들며 살 겁니다.” 그의 가구는 칠을 진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가공하지 않는다. 나무 본연의 색과 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투박하면서도 깨끗하다. 종종 나무가 갈라지기도 하는데 억지로 메우지 않는다. 구멍을 뚫어 더 이상 갈라지지 않게만 해주는 정도다. 그는 이런 가구를 만드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삶의 속도를 늦춰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이 얼마나 근사한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서 그의 가구는 더욱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작업실 밖에 나무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계절의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색이 어둡게 바랜 나무가 오히려 멋스럽다. 박홍구 씨네 가족도 그렇게 따사로운 햇볕도 쬐고 비도 맞으며 억지 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그들의 집과 가구를 보며 더러는 생각에 잠길 것이다. 한결 가볍고 편안한 표정으로. 가구장이 박홍구 031-642-4511 www.jj2.com※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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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오랫동안 꿈꿔온 집, 나만의 상상을 더해보세요
아파트에 사는 내내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꿈꾸며 가족의 보금자리를 그림으로 그리고 섬세하게 기록해왔다는 한 건축주가 제게 설계도를 내밀었습니다. 건축주가 손수 그린 설계도를 들고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글 정혜정 구성 전원속의 내집 편집부건축이나 인테리어를 전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두 딸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주부라는 이유로 제 마음은 저절로 활짝 열렸습니다. 주부는 가족의 안락함과 행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직접 그린 설계도는 현재 가족이 사용하고 있는 가구와 소품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여 꼼꼼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꿈꾸던 집을 짓기 위해 이토록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건축주를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그 가족의 첫 번째 집짓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여자이자 주부,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공간 구성과 수납, 채광, 색감, 재질 등에 관해 그녀와 세세하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소녀같이 순수하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감성을 집에 담고자 하는 마음이 건축주와 통했지요. 일반적인 집의 구조는 과감하게 버리고, 가족이 함께 혹은 각자의 공간을 자유롭게 누리며 휴식을 취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집을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집은 오랜 세월 집을 가꾸고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들을 키워 온 엄마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현실로 옮겨진, 아름답고 지혜로운 집이었습니다. 1층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거실과 가족실, 주방과 다용도실, 드레스룸과 욕실을 두었습니다. 손님이 방문해 밤늦도록 머물러도 가족들은 2층에 있는 방에서 공부하거나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했습니다. 거실 옆으로는 길고 넓은 주방이 이어지는데, 거실과 주방은 허리 높이의 파티션으로 답답하지 않게 공간을 나눴습니다. 싱크대가 길어지면 높이와 컬러에 변화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높이를 10㎝ 정도 높이거나 낮춰 턱을 주거나, 상판이나 하부의 재질을 바꾸고 컬러를 달리하면 주방이 훨씬 넓어 보일 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재미와 짜임새까지 더해지니까요. 주방 옆으로는 크고 작은 여러 살림살이를 수납하고 세탁실을 겸한 널찍한 다용도실이 있습니다. 보조 조리대 아래에는 수납공간을 여유 있게 만들고, 베테랑 주부인 건축주의 아이디어로 문대신 커튼을 달았습니다. 문보다는 커튼이 자리도 덜 차지하고, 무거운 솥이나 프라이팬, 여러 가지 조리 도구 등을 꺼내기 쉽지요. 가족실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간단한 운동 기구 등을 놓아두었는데, 미닫이문을 닫으면 완전한 방이 되도록 했습니다. 딸들이 모두 커서 집을 떠나면 부부의 침실을 1층으로 옮길 계획이기 때문이죠. 2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두 딸의 방, 테라스와 욕실이 있습니다. 부부의 침실은 따뜻하고 차분한 무늬의 벽지, 적당히 기울어진 천장, 원목창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지요. 여기에 건축주의 안목이 돋보이는 침구와 조명, 앤티크 소품이 방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 줍니다. 두 딸아이의 방에서는 엄마의 세심함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높은 천장고를 활용하기 위해 큰 다락방을 포기한 대신, 한창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각자의 아지트를 선사했어요. 침대 위에 다락을 만들어 침대에서 잠들 때는 아늑함을 느끼고, 사다리를 딛고 다락으로 올라가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2층 테라스는 1층 주방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나무 데크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건축주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던 느낌을 담으려 노력한 공간이지요. 잔디 마당을 내려다보며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을 바꾸고 나서 생각이나 습관이 달라진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집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집짓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집에 자유로운 상상을 더 많이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땅이 넓다면 집보다는 마당을 넓히고, 방보다 테라스를 넓히는 건 어떨까요? 공간의 구분 없이 하나로 넓게 이어진 원룸은요? 나와 가족이 살 집을 지을 계획 중이라면 지금부터 내가 꿈꾸는 집의 모습을 그리거나 메모해 차곡차곡 모아보세요. 이런 상상들이 모여 집을 더 풍요롭게 하고 삶을 유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글쓴이 정혜정 프로방스와 독일식 건축디자인 전문 회사인 베른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교육과 서양화를 전공했고, 어린 시절부터 집을 구상하고 만드는데 재주가 있었다. 엄마이자 아내인 주부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집, 가족들이 사랑으로 휴식할 수 있는 집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행복한 집짓기(2012)」가 있다. 031-8003-4150 www.bernhaus.co.kr※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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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강릉카페 교동899 창업분투기
강릉시 교동 899번지에 위치해 이름 붙여진 카페 ‘교동899’. 지난 2012년에 문을 연 카페는 핸드드립커피는 기본이요, 한옥카페답게 강릉의 명물로 꼽히는 사천한과와 조청, 유기농 곡물로 만든 빙수와 인절미ㆍ모찌 등의 전통 메뉴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특히, 너른 정원을 중심으로 본채와 별채로 구성된 카페는 강릉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갤러리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어 작은 미술관으로도 손색이 없다.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 구옥과의 인연과 카페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남편은 중학교 미술 교사로, 저는 미술학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같은 직업에 있다 보니 취미도 취향도 비슷하고, 언젠가 우리 둘만의 작업실을 갖자고 약속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법원 자리에 강릉미술관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만 나면 미술관을 찾았어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내려다보는 강릉시의 모습이 볼 때마다 장관인거에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생각지도 못했던 미술 구상도 떠오르고, 그저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공간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주변으로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작업실을 마련하자고 나서게 되었어요. 지인과 부동산을 통해 매물을 소개받는데, 우리 마음에 전혀 안 드는 거에요. 쉽지 않구나 싶어 실망하며 내려오는 길에 동네 주민 한 분이 집을 구하느냐며 허름한 구옥 한 채를 보여주시더라고요. 그게 바로 우리의 카페 ‘교동899’와의 첫 만남이었죠. ‘물건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란 동네 어르신들의 걱정 어린 핀잔도 뒤로한 채, 너무 마음에 들어 다음 날 바로 계약을 했어요.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길 좋아하는 우리는, 둘이서 직접 구옥 개조에 뛰어들었죠. 1년간 쉼 없이 고친 끝에 드디어 우리만의 작업실이 완성되었고, 그 동안 주부들을 대상으로 해왔던 미술 강좌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강릉은 시중에서 파는 일반 믹스 커피 내놓으면 안 되는 분위기인 거 아세요? 그래서 그 때마다 제가 직접 커피를 내려서 한 잔씩 드리곤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카페를 해보라는 제안을 많이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거에요. 구옥 개조 시 가장 염두에 둔 사항이 있다면요? 구옥을 개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옛 자재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옛 주인 분께 듣기론 1970년도에 주인 분의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집이래요. 특히, 서까래를 보면 구멍이 많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유적지와 한옥이 많은 강릉 초당동에 있던 구옥을 해체해, 이 집을 만들 때 다시 끼워 맞췄다고 하더라고요. 개조를 위해 오셨던 전문 목수도 족히 150년은 된 나무라고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렇듯 집의 사연을 듣고 나니, 자재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내부 인테리어와 구조를 변동한 것 외엔 기와와 서까래, 구들장 모두 본래 있던 자재를 활용했어요. 서까래는 원하는 색감을 내기 위해 샌딩만 여러 차례 했고, 지붕은 보수 공사 후 본래 있던 기와를 다시 얹었고, 구들장은 정원의 디딤석으로 재활용했지요. 지금 우리 카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중앙 테이블은 옛 별채의 툇마루를 뜯어다가 만든 거에요. ▲ 교동 899의 정원은 40년된 감나무를 비롯해, 옛 구옥의 구들장으로 만든 디딤석이 수를 놓는다. ▲ 부부가 한 눈에 반했던 옛 구옥의 모습들. 구옥 개조 시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던가요? 구옥 개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정말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시공 경험도 전무하다보니, 남편과 저는 무조건 발품 팔며 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면 스케치해서 인부들과 함께 만들고요. 조명이나 철망 담벼락은 샘플을 떠와 현장에 직접 설치해 보며 하나씩 콘셉트를 맞추었어요. 무엇보다 이곳에 들어서면 어릴 적 누구나 한번 쯤 보았던 옛 집의 모습과 포근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옛 기억을 그대로 보존함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 방음과 단열의 문제를 극복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요. 기능적인 면에 집중하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개조 컨셉에 맞추기가 어렵더군요. 근자에는 한옥도 규격화되어 단열의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구옥 개조에 단열까지 신경쓰는 건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랐어요. 가장 문제였던 지붕 누수는 몇 번의 방수 공사 끝에 마무리를 지었고, 카페 내에 유일한 좌식 공간은 전기패널을 깔아 겨울철 난방에 대비했어요. ‘교동899’에서만의 매력과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들려주세요. 저희 카페만의 매력이라면 뭐니뭐니해도 한옥의 정서와 현대적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이지요. 특히, 교동899를 만들면서 커피만 마시는 카페가 아닌 문화생활도 겸할 수 있는 ‘체험카페’로 운영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 작품을 전시한 것을 시작으로 강릉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운영 중이에요. 갤러리라고 하면 흔히들 그림만 떠올리는데요. 그림 말고도 퀼트, 부채, 에이프런, 캐리커처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노력 중이랍니다. 개인적으론 카페 주방 옆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좀 더 작품에 집중하고픈 계획이 있고요. 카페운영은 카페 외부에 남겨진 옛 창고를 로스터실로 개조해 좀 더 풍성한 맛의 커피를 제공할 계획입니다.교동899의 탄생비용 자기 자금 : 20,000만원 외부 자금 :4,000만원(대출) 매입료 : 20,000만원 내부 인테리어 비용 : 6,400만원(가구, 자재, 페인트 등) 설비 및 장치 비용 : 500만원(전기,수도,가스,배수시설 등) 커피 비품 비용 : 1,500만원 (로스터, 머신, 그라인더) 주방 기구 비용 : 250만원(그릇, 커피잔, 티스푼, 쟁반 등) 원두 및 식자재 비용 : 200만원(원두 구입, 기타 식자재 등) 바리스타 수강 및 자기 계발비 : 100만원 기타 잡비 : 500만원 ▲ 기둥과 서까래 모두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여기에 카페 편의에 맞춰 데크와 비가림막을 설치하고, 밋밋한 창호엔 김종애 씨가 직접 디자인해 오린 종이작품으로 무늬를 입혔다. 교동899의 건물정보 규모 :건평 32평 마당 40평 외벽마감재 : 강화유리 및 흙벽외 지붕재 : 전통한식흙기와 데크재 : 방부목 내벽마감재 : 흙벽외 일부 석고보드 바닥재 : 원목마루 및 강화온돌마루 창호재 : 기존 나무창호 및 강화유리 조명 : 직접 만든 조명 ◀ 친정아버지가 물려주신 추억의 영사기와 어머님이 쓰시던 홍두깨, 옛 주인에게 얻은 철제박스와 빈티지 재봉틀로 카페 내부를 꾸몄다. ▶ 한옥카페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부채 소품. ▲ 고재를 그대로 살린 카페 내부. 툇마루 고재로 만든 테이블과 타일을 일일이 붙여 만든 테이블 자리는 늘 인기가 좋다. 발품 팔아 찾은 조명등은 김종애 씨가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는 아이템. ◀ 주방 옆에 자리한 부부의 작업실. ▶ 유일한 좌식 공간은 난방을 생각해 전기패널을 시공하고 창호는 단열을 생각해 몰딩을 더하면서 미들창 형태로 개조되었다. ▲ 별채에 마련된 갤러리. 강릉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교동899의 운영노트 개업 년월 : 2012년 5월 8일 직원 2명 테이블 수 : 25석 로스터 : 추후 야외 창고를 로스팅실로 개조 에스프레소 머신 및 그라인더 : 이태리 달라 코르테(Dalla corte)에볼루션 / 이태리 엠핀 인터넷 : 무선인터넷 주차공간 : 주변도로 주차 및 공영주차장이용(10m) 위치 : 강릉시 교동 899번지 연락처 033-641-3185MENU ◀ 인절미와 핸드드립 커피세트. 김종애 대표의 어머니가 매일매일 공수해오는 인절미와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성덕 조청’의 궁합이 환상적.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할 만큼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배부르다. ■ 달콤한 찹쌀 모찌 3개와 아메리카노 세트. 아메리카노에 별미로 하나씩 제공되는 한과는 강릉에서 한과로 유명한 사천 지역 내 ‘갈골한과’와 ‘승일한과’ 제품을 사용한다. ▶ 정성스레 썰어 올린 모찌와 유기농 팥을 곁들인 흑임자 팥빙수. 교동899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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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3
건축ㆍ가구ㆍ커피가 한 자리에, 카페 디자이노
“카페에요, 가구점이에요?”란 물음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카페 디자이노(design-o). 목조건축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건축가 최진헌 씨와 웹 디자이너에서 바리스타로 변신한 아내 최종숙 씨가 하루 종일 함께하는 오피스 공간이다. 디자이노에 발을 디딘 순간부턴 커피향에 한번, 다양한 가구 모습에 한번, 건물 속 건물의 모습에 또한번 매료된다. 오감을 자극하는 곳, 카페 디자이노를 만난다.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건축가ㆍ가구디자이너ㆍ웹디자이너ㆍ카페 대표까지 두 분 다 이력이 화려하신 걸요? 건축일을 한지 15년이 넘었습니다. 건축일을 하게 된 건, 아버지께서 시공업에 종사하시다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대학시절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휴가 때 아버지 일을 조금씩 도와드리면서 재미를 붙이게 됐고, 제대 후 건축학과로 전과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업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일한 경험도 있지만 현장 일이 그리워 아버지와 함께 작업을 더 많이 해왔구요. 지금은 제가 설계를 담당하고 아버지가 시공을 하시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가구 제작도 독학으로 시작했는데요. 주택을 완공하면 건축주가 가구를 사 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모습이 집과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 거에요. 그래서 제가 직접 주택과 어울리는 핸드메이드가구를 제작하게 되었어요. 아내는 웹디자이너로 오랜 시간 일해 왔는데, 둘 다 강릉이 고향이라서 그런지 커피를 워낙 좋아했어요. 그래서 결혼 후 함께 호주로 건너가 저는 인테리어 공부를, 아내는 커피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카페를 열게 된 계기와 건물 선정 이유가 궁금해요. 아무래도 저희가 좋아하는 일과 연관된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카페까지 열게 된 것 같아요. 오래 전부터 건축스튜디오를 마련할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호주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정말 바쁘게 일 하느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 강릉 교동택지지구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어서 작업을 해오다 우연히 빈 상가를 보게 된 거에요. 무엇보다 천장이 높아 공간 활용도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릿속에서 벌써 공간 설계가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는 걸 보고 ‘이곳이다’ 싶더라고요. 또 그간, 온라인상에서 판매해 오던 핸드메이드 가구를 오프라인 상으로 옮겨 오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커피 일을 시작해야하는 아내를 생각한 복합적 공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건축스튜디오 & 가구 갤러리 & 카페가 함께하는 매장을 만들게 된거죠. 상호명은 ‘디자이노’, 영문으론 ‘design-o’ 인데요. ‘디자인 제로(design zero)’의 ‘o’와 ‘스튜디오(studio)’의 ‘o’를 결합해서 ‘design-o’로 정하게 되었고, 한글로 디자이노로 부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스튜디오로 운영하겠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지요(하하). ▲ 카페 디자이노의 외관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건물 속 또 하나의 건물. 최진헌 대표의 작업실인 건축스튜디오다. 카페의 콘셉트와 공사 과정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카페 콘셉트는 크게 두 가지에요. 건물 안에서도 외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에요. 외부와 내부가 이질감 없이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도록 벽돌을 사용해 공사가 덜 끝난 상가 내부처럼 연출했고요. 건축 스튜디오 역시 구조목이 하단에 그대로 노출되도록 두어, 건물 안에 또 건물이 있는 듯한 느낌을 냈어요. 카페의 개성을 확실히 살려주는 공간인 만큼 작업하면서도 재미있었죠. 또한 카페지만 건축요소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노출콘크리트, 에폭시바닥, 목구조목, 벽돌 등 다양한 마감자재들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 표현했어요. 두 번째 컨셉은 하나의 공간이지만 용도에 따라 공간 분리를 확실히 하는 것이에요.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내는 데 ‘가구’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지요. 주방 쪽엔 원목 식탁과 같은 주방용 가구를, 출입구 쪽에는 수납장ㆍ서랍ㆍ책장과 같은 생활가구를, 입구 옆 다이닝룸에는 거실용 소파와 테이블로 꾸몄어요. 특히, 다이닝룸에 위치한 통창에는 목재로 틀을 짠 후 각기 다른 의자들을 그 안에 배치해 안팎에서 의자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포인트에요. 공사는 약 3개월 정도 저와 목수 한 분하고 고군분투했네요. 그간 많은 시공을 해왔지만, 아무래도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어렵더라고요.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공사라는 것이 어느 시일이 지나면 전체적으로 능률이 떨어지거든요. 아내 역시 카페가 자리를 잡아야 개업 전에 메뉴와 카페 동선 등을 미리 체크해 준비할 수 있는 거였고요. 특히나 가구 갤러리를 위해선 카페 컨셉에 맞는 가구를 미리 제작해야 했고, 매장 디스플레이용과 판매용을 따로 구분해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낮에는 공사 일, 밤에는 가구 제작에 밤샘 작업이 이어졌죠. 그래도 저희가 구상했던 대로 카페를 완성하게 되어서 뿌듯합니다. 디자이노만의 매력과 앞으로의 운영 계획을 들려주세요. 강릉에 카페가 참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다른 카페와 분명 차별화된 디자이노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두고 애초에 만들었다면 이렇게 운영하지도 못했을 거에요. 아내가 열심히 즐기며 일할 수 있는 카페, 제가 매일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할 수 있는 공간, 정성스레 수작업으로 만든 가구들을 손님 앞에 내놓는 뿌듯함.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있기에 손님들도 그 마음을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소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오리나무 등으로 제작된 핸드메이드 가구들. 함께 전시된 그릇들은 호주에서 귀하게 모셔온 수집품들이다. 디자이노의 탄생비용 자기 자금 : 5,500만원 외부 자금 : 2,000만원 (자금대출) 임대료 : 비공개 내부 인테리어 비용 : 4,800만원(가구, 자재, 페인트 등) 설비 및 장치 비용 : 1,100만원(전기,수도,가스,배수시설 등) 커피 비품 비용 : 1,300만원(로스터, 머신, 그라인더 등) 주방 기구 비용 : 200만원(그릇, 커피잔, 티스푼, 쟁반 등등) 원두 및 식자재 비용 : 80만원(원두 구입, 기타 식자재 등) 바리스타 수강 및 자기 계발비 : 호주 연수 ※ 인건비와 내부 인테리어 비용은 최진헌 대표 스스로 진행한 부분이므로, 일반 건축주ㆍ개인이 의뢰할 시 발생하는 견적과는 차이가 있음. ◀건축스튜디오 외벽은 귀여운 빵도마로 포인트를 주었다. ▶ 요즘 바닥재로 가장 인기가 많은 에폭시로 빈티지한 감각을 더했다. ▲ 건축스튜디오 내부. 손님들이 없을 땐, 주로 이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디자이노의 건물정보 규모 :37평 외벽마감재 : 대리석 데크재 : ACQ 방부목재 내벽마감재 : 고벽돌 및 시멘트 블록타일 바닥재 : 시멘트 위 투명에폭시마감 창호재 : 스틸프레임 위 강화유리 조명 : 펜던트 및 할로겐 매입등 ▲주방 옆으로는 테이블과 소파로 안락한 거실 공간을 연출했다.▲ 다이닝 룸 컨셉의 공간.디자이노의 운영노트 개업 년월 : 2012년 5월 19일 테이블 수 : 6석 로스터 : 로스터기 없음 에스프레소 머신 및 그라인더 : BFC 인터넷: 와이파이(wifi) 가능 할인 및 이벤트: 핸드메이드가구의 제작 및 전시 주차공간: 5대 운영시간 : 오전 11시~오후 11시 위치 : 강릉시 교동 1902-3 연락처 : 010-3123-3755 www.design-o.net▲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곳으로, 가구 갤러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공간이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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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이새별 씨의 ‘한국제비꽃연구회’
“자연의 생명을 훼손시킬 권한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구성 이세정취재협조 한국제비꽃연구회 blog.naver.com/joymodem ▲◀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장백제비꽃 ▼▶외제비꽃 블로그 첫 화면의 문구처럼, 이새별 씨는 이 땅에 피어나는 작은 풀꽃이나 나무들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길 바라는 선한 마음으로 블로그를 열었다. 그의 블로그는 우리 꽃과 우리 나무에 대한 알찬 정보가 많고, 모르는 식물을 물으면 친절하게 답해주기로 유명하다. 본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현장 답사로, 그의 블로그는 식물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으로 채워지고 있다. 옆에서 보는 듯한 생생한 사진은 덤이다. 이새별 씨는 농장과 식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원예 식물이나 자생식물들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스스로 식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평생을 산야를 돌아다니며 자생식물들의 분포와 생태를 연구했다고 블로그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는 자생식물이 있는 곳이라면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울릉도 등 마다 않고 사진기를 둘러매고 떠난다. 특히 토종 제비꽃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요란하지 않지만 소박한 풀꽃, 제비꽃은 친구이자 애인삼아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별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우리 제비꽃을 찾아 꽃속(식물분류 단위 중 하나)을 연구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도 주요 과제다. 현재 약 85~90% 정도는 찾았다고 자신한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식물 한 종을 찾아내는 것도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생각과 이를 후손에게 물러줘야 하는 시대적 사명감에서 비롯된다. “산이나 들에서 만나게 되는 식물은 꽃색이 청명해 캐다 기르고 싶은 욕심도 들겠지만, 이는 아무리 원예 전문가라 하더라도 힘든 일입니다. 원래의 자연 환경을 인간이 만들어주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연히 애만 쓰다 식물을 죽이고 내다 버리게 되지요.” 그의 블로그는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원예용 식물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생활 폐품을 활용해 분을 만드는 방법도 소개한다. 또한 답사길에서 얻은 여행의 단상을 토대로 직접 쓴 시나 콩트, 에세이 등도 올리고 있다. 실제로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꽃과 식물이 그리운 이라면,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 마음을 달래보자. 어느새 발끝에서 묻어나는 꽃향내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 플라스틱 폐품을 이용한 수태화분 전구에 접붙이기 한 화분 뚜껑을 열고 닫아 물구멍을 대신하는 화분※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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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6
부부가 손수 지은 강화도 펜션 NANY HOUSE
강화의 저녁풍경에 폭 안긴, 그림 같은 세로집을 지었던 황진석, 김난희 부부. 2년이 지나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딴 펜션 두 동 ‘나니’와 ‘지니’를 지었다. 처음 방문한 마을인데도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은 부부가 직접 지은 집에서 묻어나는 따스함 때문일까. 그간 겪었던 우여곡절이 고되지만은 않았다는 부부에게서 삶의 넉넉함이 느껴진다.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바람 한 점 없이 화창한 오후, 강화도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펜션 ‘나니하우스(NANY HOUSE)’를 찾았다. 2년 전만 해도 내 집을 지어 갓 입주한 건축주였던 황진석, 김난희 부부가 지금은 시공, 인테리어, 가구제작까지 직접 도맡아 펜션을 짓고, 펜션지기로의 삶을 시작했다. 남편 진석 씨는 고향이 강화도다. 그래서 미리 귀촌을 준비했겠거니 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2002년, 운영하던 고시원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강화도로 내려온 것은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갑작스레 시작된 시골 생활에 부부는 생활비와 자녀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죠.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도 시골에서 농사만 지어서는 생활하기 어려웠거든요.” 과수원과 펜션을 하려고 생각했던 땅이 있었지만, 2004년에 그곳에 있던 고인돌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정작 농사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4년 동안 진석 씨는 에어컨을 설치하고 농작물 저장고를 짓는 일을 했다. 그때 진석 씨가 강화도에 지은 저장고만 해도 이삼백 개는 족히 넘는다. 난희 씨는 언니가 오랫동안 운영해온 식당에서 함께 일하거나 밭에서 참외를 키워 도로변에서 직접 팔기도 했다. “아내가 고생을 참 많이 했지요. 어머니께서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후, 바로 아버지까지 편찮으신 바람에 8~9년 정도를 꼬박 병시중을 들었어요. 그 와중에 농사도 짓고 아이도 키우고 아마 숨 돌릴 틈이 없었을 겁니다.” ▲ 부부의 손때가 묻은 자투리 목재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멋스럽다. ▲ 바람 부는 날에는 청아한 종소리가 울린다./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기 좋은 고양이 벤치 ▲ 뜰 안에는 자연 속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도록 데크를 넓게 깔았다. 말 그대로 참 ‘별일’ 많았던 부부다. 젊었을 때 고등법원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진석 씨가 2년 만에 첫 직장을 박차고 나온 뒤, 부부는 고생길이 훤한 길만 찾아다녔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고달픈 생활에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후회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은 가지지 못한 마음의 여유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됐음을 느낄 수 있다며 허허 웃는다. 그 순간에는 정말 고됐지만, 지금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깊이와 풍요로움을 얻게 된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지난해 부부의 세로집은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집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집짓기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을 보며 전원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실감했다. 부부 역시 세로집에 살면서 늘 강화도의 풍경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여백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 참 좋았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 한적한 곳에서 마음껏 쉬는 것이 더 좋은 휴식처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던 중 마침 지인과 함께 매입하여 세로집을 지었던 필지의 나머지 절반을 사들이게 되었다. 부부는 그 땅에 먼저 지은 세로집과 똑 닮은 펜션 두 동을 짓기 시작했다. ▲ 나니하우스에서는 식탁, 싱크대는 물론 쟁반 하나까지 부부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불편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자연과 벗 삼는 마음으로 하루 정도는 특별하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나니하우스는 각각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욕실과 화장실을 가려면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침실도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올라가거나 다른 공간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방학 때마다 들렀던 시골 할머니 댁 같다. 오밤중에도 화장실에 가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했던, 겨울에는 찬 공기에 오들오들 떨며 안채에서 사랑채까지 건너가야 했던 옛날 한옥의 구조를 묘하게 빼닮았다. 집의 어느 문을 열어도 자연을 만나게 하는 것, 건물 사이사이에 최대한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부부가 나니하우스를 지으면서 구상했던 기본 콘셉트다. ▲ 침대에 누워도, 소파에 앉아도 창을 통해 마을의 풍경이 들어온다. ▲ 강화도의 저녁풍경은 늘 따뜻하다. 어둠이 내리자 노랗게 별빛을 발하는 나니하우스먼저 지은 살림집인 세로집은 설계와 시공을 모두 전문가에게 맡기고 부부는 데크와 대문, 휀스만 직영공사했다. 하지만 이번 나니하우스는 설계만 세로집을 설계했던 스무숲건축사사무소의 홍진희 소장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부부가 모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자투리 목재 외장은 진석 씨가 하나하나 이어붙인 결과물이다. 목재의 폭이 일정하지 않아 골라가면서 붙이느라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니하우스의 문, 가구, 소품은 모두 난희 씨가 직접 나무로 만들었다. 옷걸이, 싱크대, 선반, 식탁, TV장 등 나니하우스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다. “소품은 물론 타일, 조명 하나까지 직접 발품 팔아서 골랐어요. 사소한 걸로 둘이 많이 싸웠죠. 결국은 대부분 제 고집대로 하게 됐는데, 어떤 때는 제가 너무했나 싶기도 해요.” 남편의 말에 난희 씨는 ‘진정한 승리자가 누군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라며 하하 웃는다. 아옹다옹하는 부부의 모습이 오히려 정답다. 서로 의지하며 우여곡절을 함께 해온 세월의 힘일 것이다. ▲ ‘지니’가 바라보는 ‘나니’의 모습. 남편의 눈에 들어온 아내의 모습처럼 다정하고 포근하다. / 진석 씨에게 집짓기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다. 하나씩 완성해가는 성취감에 또다시 톱질을 한다. / 문을 열면 방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숲을 만나게 된다. 자연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집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욕실. 욕조 바로 옆 벽면에 창을 내어 뒷산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 아늑하고 조용한 뒤뜰을 만들기 위해서 산과 거리를 조금 둔 위치에 집을 앉혔다.▲ 함께 집을 지으며 부부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나니하우스를 다 짓고 나서도 진석 씨의 DIY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세로집 옆 데크 공간에 펜션 손님들을 위한 작은 카페를 만들 계획이다. 미술을 전공했던 난희 씨도 목공 작업을 계속하며 새로 지을 카페에 둘 와인장과 소품 만들기에 한창이다. 펜션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면 진석 씨는 펜션 일을 아내에게 일임하고 강화도에서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한다. “하얗게 쌓인 눈 때문에 주변이 대낮처럼 환했던 겨울밤이었어요. 자려고 누웠는데 저벅저벅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봤더니, 고라니 한 마리가 한가롭게 데크를 가로질러 가더라고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죠.” 이런 그림 같은 풍경과 영화 같은 순간의 경험이 바로 자연에 사는 맛 아닐까. 부부가 의도했듯, 나니하우스에서는 모든 문이 밖으로 이어져 있어 언제 어디서나 자연을 만나게 된다. 이는 곧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부의 마음이기도 하다. 집 안 곳곳에 작게 난 창으로 보이는 강화도의 담백한 풍경은 두 사람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 황진석, 김난희 부부의 넉넉한 삶이 몸과 마음을 한없이 풀어지게 하는 특별한 하루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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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체계적인 흙 교육을 전파하는 한국흙건축연구회 김순웅 교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미래에도 활용 가능한 디자인을 고민해온 건축계이지만 재료공학적 측면에서 ‘흙’의 가치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목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한국흙건축연구회 사무국장인 김순웅 교수를 통해 흙건축의 매력과 함께 유네스코에서 인증하는 교육기관 ‘한국흙건축학교’에 대해 들어보자. 취재 정사은 사진 변종석 흙을 되돌아보다 옛 재료인 ‘흙’이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흐름은 이렇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통에 파괴된 건물들을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근대재료가 흙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런데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왔고,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던 시스템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를 대체할만한 재료를 고민하면서 흙이나 나무같은 자연재료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거죠.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이니 지구 환경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류와 상생(相生)할 수 있는 재료로서 흙만큼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요? 198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는 흙으로 집을 짓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이 일이 점점 커져 땅을 기증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언론에서 중계도 했습니다. ‘일-다보’라는 마을에 70여 가구가 살 수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는 단지가 조성됐어요. 이를 짓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흙건축 관련 기술을 모두 집약할 필요가 있었기에, 프랑스 국가에서 ‘크라테르’라는 국립흙건축연구소를 설립합니다. 바로 이것이 체계적인 흙건축 연구와 교육의 시작입니다. 국내에서 흙건축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대한민국은 어찌 보면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 할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 흙집이 일순간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요. 6.25 전쟁통에 파괴된 전통건축의 재건과 1960년대부터 진행된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시멘트’라는 재료가 대량 공급됩니다. 값싼 재료와 표준화된 공법 덕분에 이것이 전통 재료인 흙을 일순간 밀어냈죠. 재밌게도 이 시기가 외국에서 흙건축이 대안으로 등장한 시기와 정확히 반대 그래프를 그려요. 그러다 1990년대 들어서 세계적인 움직임을 간파한 건축계 일부에서 몇몇 선구자분들이 여러 매체에 칼럼도 기고하시고 흙의 장점에 대해 역설하시면서 재료로서의 ‘흙’을 다시 돌아보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흙건축의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시멘트는 강도나 배합비 등이 규격화되어 있지만, 흙은 지역과 기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역에 맞게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그 지역 기후와 흙의 성질에 맞게 개발되고 지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움직임을 모두 다 포용할 수는 없어요. 최근 몇몇 사 기관들을 보면 제대로 연구가 안 된 사례들을 주먹구구식으로 교육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외국의 흙집 짓기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기도 하는 행태도 보입니다. 심지어 ‘먹으면 낫는 흙’, ‘암을 고치는 황토’ 등 건강과 직결되는 자극적인 슬로건으로 상업화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가히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요. 한국흙건축연구회의 설립배경은 무엇인가요? 흙건축 전문가인 황혜주 교수를 필두로 2006년 흙건축연구회가 설립되었는데요, 처음에는 흙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건축가, 시공자 그리고 재료연구자들이 모여 연구를 하던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흙건축을 잘못 해석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을 걱정해 이대로 가다간 바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듯하다는 시대적 위기감을 가지고 2009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후 흙건축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 한국흙건축연구회 여름 정기 워크숍 참가자들 ▲ (위로부터) 흙메주 공법으로 쌓은 흙 / 고강도 흙다짐 공법/ 흙타설공법으로 만든 벽/ 계란판을 이용한 EP공법연구회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흙이 일상에서 자유자재로 활용되기 위해선 강도의 문제가 연구되어야 하고, 시장성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고 축적된 기술이 있어서 강도 높은 축조가 가능했지만, 그런 것이 끊어진 지금은 이를 새로 연구·개발해야 합니다. 한국흙건축연구회는 이를 위해 여러가지 연구 개발과 흙건축 교육을 함께 실시합니다. 사실, 벽에 금이 간다거나 압축으로 인해 벽체가 주저앉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에 우리 연구소로 연락이 오는 사례가 왕왕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저희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인 현장도 많고요. 연구 성과에 대해 알려주세요. 주로 흙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각종 공법을 개발하고 보완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미 시멘트 벽돌 이상의 고강도 흙벽돌도 개발된 상태이고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정제기술이나 배합비, 첨가물의 종류와 양 등의 개발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흙을 다져서 벽체를 만드는 흙다짐공법의 연구 또한 활발합니다. 프랑스 속담에 “흙집은 모자를 씌우고 장화를 신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마와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존 재래식 흙다짐의 경우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처마를 길게 빼야 하고 기초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요, 연구소에서 개발한 고강도 흙다짐 공법을 이용하면 지붕 없이도 벽체가 가능합니다. 또, 흙타설공법은 외국에도 사례가 없는 공법이에요. 전라남도 영암의 관광안내소가 이 공법으로 지어져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방문해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 하듯이 시멘트 대신 흙만 넣은 공법인데, 강도를 높이기 위해 석회와 함께 배합합니다. 여기서 석회와 시멘트는 엄연히 다릅니다. 흙의 실리카 성분과 석회의 알칼리성분이 반응해 기화되어 어우러지며 함께 굳는데, 이 배합비를 조절하면 시멘트 못지않은 강도가 나옵니다.그리고 최근, 독자적으로 개발한 EP공법도 있습니다. 계란판과 흙을 겹쳐서 쌓는 것으로 기와를 흙 사이에 쌓는 ‘와담’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입니다. 이는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네팔의 난민센터인 ‘맘(Mom)센터’ 건립에 사용될 정도로 쉬운 공법입니다. 이처럼 자가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공법 또한 개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흙건축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군요. 이미 대규모 건물에도 폐자재를 발생시키는 건축자재 사용을 지양하는 움직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습니다. 교토 의정서에도 2050년까지 철근과 시멘트 사용량을 현재의 8~90% 이하로 줄이게 되어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대체 재료인 ‘흙’에 관심이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흙의 미래를 기대하다 ‘한국흙건축학교’는 어떤 과정입니까? 전라북도 완주에서 정식으로 문을 연 한국흙건축학교는 흙건축 교육 지원을 약속한 완주시와의 협약을 통해 일회성 교육이 아닌 체계적인 흙건축 교육을 진행합니다. 또, 이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석좌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는 과정입니다. ‘유네스코 석좌프로그램’이 무엇인가요? 이번 한국흙건축학교 설립의 주역할을 한 한국흙건축연구회는 2009년 프랑스 국립 그르노블 건축대학 흙건축연구소 ‘크라테르(cratere)’와 MOU를 체결하고 지금까지 교육과 연구개발의 모토를 함께해 왔습니다. 이 기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공식 흙건축 기관으로 흙의 개념부터 현장까지 꼼꼼하게 가르치는 커리큘럼으로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습니다. 이번에 완주에 설립되는 학교 또한 크라테르의 커리큘럼을 기본으로, 한국에 맞는 흙건축 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기존의 흙건축 교육과는 차별화된 모습이 있다고 하던데요? 지금까지 한국흙건축연구회에서 여름·겨울 단발로 진행하던 워크샵을 확대해 매달, 그리고 장기적으로 진행합니다. 역사와 설계, 철학과 엔지니어, 설계 등 각 파트의 흙건축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수진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커리큘럼에서는 ‘흙집 짓기 과정’을 시작으로 흙미장, 흙다짐, 흙벽돌 등 공법별로 배우는 1박 2일 코스 등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수강하면 흙건축을 전체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이 길러집니다. 수강생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흙집 짓는 기술자나 전문 설계자가 되기는 부족한 교과과정이지요. 그래서 한국흙건축학교에서는 6개월 동안 꾸준히 들어야 수료가 가능한 학기제를 운용할 예정입니다. 대상은 귀농·귀촌 예정자나 직접 흙집을 지으려는 건축주,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도 포함합니다. 특히, 흙에 관심 있는 건축가에게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흙건축을 제대로 교육하고 그들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공법에 대한 이해나 설계 등 전문지식의 습득이 빠를 것으로 기대되어 흙건축을 체계화할 수 있는 대학원 수준의 교육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흙건축의 청사진을 그려본다면? ‘건축(Architecture)’이라는 행위가 그렇듯 근원적인 기술을 구현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형상을 만들어간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만 잘 살자고 뻐기는 건축이 아니라 힘을 모아 짓는 건축, 주변과 공존하며 지구환경에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건축, 이를 구현하는 것이 흙집이 아닌가 싶습니다. 흙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만만한 재료’인 게 사실이죠. 사람들이 흙집을 제대로 배우고 이해해 한 칸씩, 한 칸씩 완성해가는 즐거움을 누리게끔 해주는 것이 흙건축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문의 : (사)한국흙건축연구소 070-8638-2466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318-1 http://cafe.naver.com/eartharchitecture※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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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강원도 산골 섬유공예 공방, '봄볕 내리는 날'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으면 인생이 한결 즐겁다고들 하지만, 막상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다. 여기 일찌감치 욕심을 버리고 강원도 산골에 살림을 차린 부부가 있다. 소박하지만 내 손으로 지은 흙집, 자작나무 한 그루부터 잔디까지 직접 심은 마당. 1년 365일 ‘봄볕 내리는 날’인 그곳에 천연 염색하는 남편 박정용, 바느질하는 아내 김희진 부부가 산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 직접 아크릴판을 자르고 페인트를 칠해 세운 간판 ▶동네 학교에서 가져온 현관문과 창문 올해 봄은 유난히 뜸을 들인다. 여전히 쌀쌀한 바람에 애타는 마음으로 강원도 삼척의 박정용, 김희진 부부를 찾았다. 이곳에서 부부는 ‘봄볕 내리는 날’이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산다. 펜션을 하며 천연염색, 규방공예 수업도 하고 텃밭도 일구면서 살림을 꾸려나간다. 대학 시절,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풍물동아리 경험을 살려 가끔 마을에서 하는 풍물수업도 맡아서 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딱히 모자라지도 않은 삶이다. 어느덧 전원생활 10년 차에 접어든 부부는 결혼 전부터 귀촌에 대한 뜻이 같았다. 결혼하고 부산,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로 내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결혼한 지 9년째 되던 2004년, 드디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댁이 있는 삼척으로 내려왔다. “다들 그 젊은 나이에 왜 귀촌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온통 시골 가면 뭐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삼척에 내려오기 전 회사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실적에 관한 스트레스나 일상적인 중압감에 매일 피로가 몰려왔다. 특히 장이 좋지 않았던 아내 희진 씨는 조금만 예민해져도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아파도 눈치가 보여서 휴가도 쓰지 못하고 한약을 먹으며 힘겹게 버텼다.“몸이 약하기도 했지만, 회사 다니면 식사도 불규칙하고 그렇잖아요. 장이 안 좋아서 출근하다가 지하철에서 내린 적도 많아요. 여기 오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진 만큼 몸도 건강해졌죠. 지금은 뭐, 장군이 됐어요.” 힘든 직장 생활 중에도 아내 희진 씨는 퇴근 후에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오후 5시에 퇴근하면 그녀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야간대학교 의상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1년 동안 문화센터에서 조각보 수업을 들었다. 남편 정용 씨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바느질을 배우는 사이 도자기를 배우러 다녔다. 이때 배웠던 것들이 지금 이 부부의 ‘일’이 되었다. ▲ 강원도 산자락에 폭 안겨 있는 ‘봄볕 내리는 날’ 정경 ▲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당에 초록빛 잔디가 올라온다. ▲ 펜션 벽체는 흙부대와 인슐레이션을 썼다. ▲ 별채인 펜션의 1층은 방과 부엌이 함께 있는 원룸식으로 꾸몄다. “그래도 저희는 남들보다 쉽게 귀촌한 편이에요. 삼척에 부모님도 계시고 땅도 있었고. 귀농·귀촌하려고 하면 땅을 구하는 것부터가 일이잖아요. 내려와서 처음 1년 반은 부모님 댁에서 살았어요.” 이들의 첫 번째 집은 처마에 부연까지 있는 2층짜리 한옥이다. 좀 더 소박한 흙집이나 초가집을 짓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계획과는 다르게 큰 한옥을 지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이듬해에는 남편 정용 씨가 손수 흙집 짓기에 나섰다. 생전 처음 지어보는 집인지라 국내외 관련 책을 찾아보거나 집 짓는 현장, 건축 관련 전시회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준비했다. 그래도 아주 혼자는 아니었다. 귀촌한 사람들의 모임인 ‘농촌관광연구회’에서 영월에 사는 목수 한 분을 알게 됐다. 그분과 함께 기초공사부터 기둥 세우기, 구들 놓기, 흙벽치기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작업했다. 10분 거리의 아랫동네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공수해 온 트랙터도 집을 짓는 데 한몫했다. “기둥을 만들 때 나무껍질을 벗기는 도구가 따로 있는데, 그때는 모르고 낫으로 일일이 벗겼죠. 공사기간 총 3개월 중에 그것만 한 달은 걸렸어요, 하하.” 이후에 펜션용으로 흙집을 한 채 더 지어 지금은 집이 총 세 채다. 동네에서 집 짓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사려니 종류가 많지 않아 생각해뒀던 재료를 사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낡은 집에서 가져온 고재나 폐교에서 가져온 현관문과 창문이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살려준다. 집을 지은 이후에도 부부는 공동 작업장을 수리하거나 개인 작업실을 확장하고 데크를 만드는 등 계속해서 집을 만지면서 산다. 직접 집을 짓거나 고쳐나가면서 겪었던 경험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http://blog.naver.com/meokmul)에 과정별로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 “집을 짓고 살다 보니 흙벽이 주저앉는 곳도 있고 아쉬운 점이 꽤 많더라고요. 본채를 짓기 전에 창고를 먼저 지어보는 게 실수를 줄이는 방법인 것 같아요.” ◀ 겨울마다 구들방을 덥혀주는 아궁이 ■ 전시된 조각보 작품들은 따뜻한 색감을 자랑한다. ▶ 희진 씨의 개인작업실이 최근 확장공사를 마쳤다. ▼ 2주에 한 번 규방공예 수업을 하는 작업장(사랑채). 전시된 작품은 부부가 직접 만든 것으로, 판매도 하고 있다. 아내 희진 씨가 어느 글에서 말했듯, 사실 도시나 시골이라는 장소 자체가 누군가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 삼척에서의 일상은 매일 다른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같은 염료로 천을 염색해도 매번 다른 빛깔이 나오는 것처럼. “여기 오고 나서는 매 순간이 좋은 것 같아요. 이 마당이 처음엔 모래밭뿐인 비탈이었거든요. 그때 사진을 지금 보면 ‘이랬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엉망인데, 그 당시에는 너무너무 좋았던 거예요. 마당에 라일락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정말 행복해요. 처음 집 지었을 때도 그랬고, 작업장 테이블을 새로 샀는데 이 공간에 딱 맞을 때도 그랬어요. 살다가 부족한 게 있다 싶으면 채우면서 살고, 그때마다 서로 ‘아, 너무 좋다!’ 감탄하고 그러면서 살죠.” 욕심을 버리면 사소한 일도 생활의 활력이 되고 새로운 의미가 되나 보다. 시골 내려와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희진 씨가 숨도 안 쉬고 “회사 안 가는 거!”라고 외친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뜨는 것도 싫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게 된다. 전과 다르게 해가 뜨면 좋아하는 일들이 펼쳐지니 하루의 시작부터 다르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직장 다닐 때보다 힘들어요. 여기서는 예전에 벌던 거 5분의 1만 버는 게 목표거든요. 하지만 많이 번다고 풍족하게 사는 건 아니잖아요? 신랑이 가끔 얘기해요. 이제 우리 나이면 명퇴(명예퇴직)할 나이니까 좀 있으면 친구들 다 회사에서 잘릴 거라고요. 우린 미리 잘려서 그런 고민 안 해도 되지 않느냐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쉽다. 백화점 세일 시즌마다 가서 옷을 사고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즐거움은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새로 완성된 작업실에 한참을 앉아 따스한 햇볕을 만끽하는 시간,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구들방에 나란히 누워 즐기는 낮잠. 이런 즐거움은 단순히 대가를 지급하면 얻어지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바느질 수업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수강생 중에 70대 중후반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원래 눈이 침침하신데다 백내장 수술까지 하셔서 바느질하는데 어려움이 많으셨죠. 그런데 삐뚤삐뚤하더라도 끝까지 완성을 해오시더라고요. 주머니를 만들면 세뱃돈을 넣어서 손녀 주시기도 하고요. 그리곤 정말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제 손을 꼭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하시면서. 결과물이 예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었죠. 그럴 때마다 이 수업하길 참 잘했구나 싶어요. 저한테도 그 행복이 같이 묻어오는 거잖아요.” 남편 정용 씨가 가진 삶의 목표는 ‘게으름’이다.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빈둥거리며 사는 줄 오해한다”며 타박하지만, 그저 웃을 뿐이다. 그 게으름이란 게 ‘여유’와 같은 의미인지 묻자 정용 씨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유는 할 일이 없어서 생기는 ‘여가’와 같은 시간이고. 게으름은 할 일은 있는데 하기 싫은 거 있잖아요, 왜 굳이 하기 싫은 거(웃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올해는 바빠서 아직 밭에 상추씨도 못 뿌리고 매실나무 가지치기도 못했다. “시골에 내려오면 농사짓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도시에서 하던 일을 시골에서 계속 이어갈 수도 있고요. 정보화 마을에서는 강의를 맡거나 농산물 유통 사업에 참여하는 것처럼 월급을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요. 아니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일단 내려와 살아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어디를 가든 자리를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요.” “감나무를 키울 수 없는 곳에서는 살지 말래요. 너무 춥다고.” 유독 눈이 많이 내린 지난겨울, 춥지는 않았는지 물으니 희진 씨가 이리 대답한다. 강원도 정선에 사는 친구가 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더니 매서운 추위에 결국 얼어 죽었다고 하더라면서. 같은 강원도지만 ‘봄볕 내리는 날’이 있는 삼척은 감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한계선이다. 이들 부부가 마음껏 게으름 피우며 만들어 놓은 삶의 틈 사이로 사람의 온기가 스미기 때문일까. 아직은 마당에 초록빛 잔디가 올라오기 전이지만, 하루하루가 봄볕 내리는 날인 그들의 집. 그곳에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봄’이 먼저 와 둥지를 틀고 있었다. http://blog.naver.com/meokmul※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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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5
한옥 개조해 전통 찻집을 운영하다
오랜 시간 마을에 자리하던 텅빈 구옥 한 채. 그곳에선 지금 꽃내음 가득한 차향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구옥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은 여자, 유혜란 씨를 찾아 마실길에 올랐다.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 강원도 춘천의 작은 마을에서 전통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유혜란 씨. 여유로운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첫인상은 다소곳하고 꾸밈없었다.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들어오는 이들은 저마다 그럴 만한 연유를 안고 있다. 그녀 또한 그러하듯, 숨은 속내를 내비친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됐어요, 내가 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걸.” 강남 엄마, 시골 내려온 사연 이곳에 오기 전, 혜란 씨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20대엔 국내 도예계의 대모로 불리는 황종례 교수의 지도 아래 도예가로서의 꿈을 펼치기도 했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유명 구두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로도 활동했었다. 그리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요즘엔 ‘엄마’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냥 엄마’와 ‘강남 엄마’. 그녀는 소위 ‘강남 엄마’란 이름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인생의 싸이클들은 수년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접하기 전까지는. “대안학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서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교육환경을 접하며 적잖은 충격에 빠졌죠. 또 학창시절 친구가 그곳의 교사로 활동하는 게 아니겠어요. 반가우면서도 아차 싶었죠. 제가 살아온 인생이 세상의 정답인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돌아보니, 그간 놓치고 살던 부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따뜻한 저녁 밥상을 먹어본 지가 언제더라? ’, ‘디자이너란 이름으로 사는 것이 누구를 위한 삶일까….’ 혜란 씨는 이곳에 오기 이전의 삶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었다 자평했다. 그렇게 채워온 인생의 퍼즐을 모두 쏟아낸 지금, 그녀는 다시금 새 조각들을 꺼내 들었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다큐멘터리로 시작된 대안학교와의 인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우연치곤 너무나도 필연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가 대안 학교 교사로 있다고 하니, 하루아침에 관심이 믿음으로 변해버렸죠. 또한 모든 일엔 다 뜻이 있기 마련이라고, 지인 중 한 분이 간디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단순히 우연으로 넘겨 버리기엔 너무도 귀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 학교를 다니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다행히 아들 산이는 간디학교에 다닐 날을 엄마보다 더 손꼽아 기다렸다. “컴퓨터를 제일 재밌는 장난감으로 알고 살던 아이가 이젠 친구들과 산으로 강으로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난생 처음 부모 곁을 떠나 친구들과 단체 생활을 해나가면서 자존감이 무척이나 강해졌지요. 아이나 저나 이 선택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혜란 씨 역시 많이 변했다. 특히나 대안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다양한 이력과 가치관들을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서울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직접 면전에서 경험하게 되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 때부터 인생이 참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없던 용기가 마구마구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얻게 된 용기는 그 후 여행 삼아 들렀던 춘천의 한 마을에서 가감 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귀촌보다 어려웠던 구옥 개조기 사과와 막국수로 유명한 동네라지만 혜란 씨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 일에 더 빠져있었다. 그리곤 정해진 운명처럼 텅 빈 구옥 한 채에 발길을 멈췄다. “오랜 시간 비워져 있었는지 사람 키만 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서도 하얗게 만발한 복사꽃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마치 무릉도원을 만난 것만 같았죠.” 그렇게 만난 구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렵게 수소문해 찾은 집 주인과의 만남. 그것이 귀촌의 결정적 발단이었다. 애초에 집을 팔 생각이 없던 집 주인을 매일 같이 찾아가 설득하길 수개월, 그간의 정성이 통했는지 그토록 원하던 구옥을 어렵사리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옥을 손에 넣긴 했지만 막상 개조를 시작하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개조보다 먼저 한옥을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영상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일전에 한옥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 떠올랐어요. 친구 덕분에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었고, 때마침 한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구옥 개조에 임할 수 있었죠.”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지붕과 인테리어를 바꾸는 정도였기에 1개월 정도의 공정이면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자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최 끝날 기미가 안 보이던 개조는 장장 6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실마리가 잡혔다. “어렵게 일꾼을 구했더니 일도 다 마치지 않고선 사라져 골머리를 앓았어요. 처음 겪는 일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다행히 이웃주민들과 지인들이 응원해 주신 덕분에 꿈꿔왔던 모습대로 개조해 낼 수 있었어요.” 본채와 별채로 나뉜 구옥은 최대한 옛 자재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 아래 공사가 진행됐다. 따라서 구옥에 쓰인 고재는 두 달간 정성껏 사포질해 다듬고, 기와 역시 기존 것을 그대로 살린 채 슬레이트 지붕이던 별채에만 새롭게 강판을 올려 주었다. 본채와 별채에 자리하던 마루는 모두 뜯어 낸 후 데크를 시공해 변화를 주었고, 전통 창호 역시 모던하면서 실용적인 폴딩 창호로 교체했다. 내부는 혜란 씨가 직접 천연염색한 천으로 곳곳을 둘렀고, 찻상은 지인들이 선물해 준 갖가지 공예품들을 더해 멋을 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구옥 개조라 모든 면면이 애틋하지만, 그 중에서도 별채 벽면을 드리운 색색의 벽화에 애착이 남다르다. “구옥을 개조해 찻집을 연다고 하니 알고 지내던 예술가 분들이 찾아와 재능기부를 해 주셨어요. 조선시대 강원도 보자기를 모티브로 삼아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덕분에 밋밋했던 벽이 화사해졌지요.” 벽면 곳곳을 채우던 그림은 이내 구옥 개조의 메인 컨셉이 되어 처마 끝, 벽체 모서리, 수돗가, 심지어 구르던 돌멩이도 색색의 그림들을 입고 찻집 곳곳을 비춘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애정 표현법 혜란 씨가 이곳에 들어온 후로부터 마을엔 소소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여기 분들은 얼마나 순박한지 몰라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그 흔하다는 텃새 한번 겪어 보지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외지에서 온 혜란 씨를 한 가족처럼 품어주었다. 생색내는 일이 될까봐 누가 가져다 놓은 지도 모르게 이른 아침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두부를 대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 상큼한 제철 과일도 한 봉지 툭 무심하게 놓고 간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와서 이름 모를 들꽃 알기 삼매경에 빠진 혜란 씨를 위해 수시로 야생화를 옮겨와 찻집 곳곳에 심어두기도 하고, 찻상 위 꽃병에 소담스럽게 담아 선물하기도 한다. 많고 많은 사연들 중 의미있는 변화를 꼽자면 단연, ‘차 마실 산’의 상징인 벽화와 처마 끝을 수놓은 색색의 문양들이 어느새 마을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는 것. “동네 어르신 댁에 놀러갔는데 벽에 이전에 없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거에요. 알고 보니 우리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선 예뻐서 따라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또 다른 집에는 꼬마공주가 크레파스로 그린 귀여운 작품도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돌멩이에 그림 그린다고 이상하게 보시던 분들이 이제는 손수 예쁜 돌로 구해다 주시니,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저를 한식구로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뜨거워져요.” 귀촌의 의미를 물으신다면햇수로 10년 째 채식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 찻집의 메인 메뉴 역시 사과 슬러시ㆍ발효차ㆍ국화차ㆍ감잎차ㆍ십전대보차ㆍ배도라지생강차 등의 유기농 건강 음료와 양갱ㆍ망개떡과 같은 간식거리,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단팥죽ㆍ호박죽ㆍ연잎밥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직접 수제로 만들어 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보다 메뉴에 쓰이는 주 재료들이 모두 마을에서 나온다는 점이 남다르다. “마당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과 나물들을 캐 밑반찬으로 만들어 먹고요, 이웃 주민들이 정성으로 기른 작물들은 찻집 메뉴에 다양하게 쓰여요. 돈 주고 사오는 거라곤 간혹, 왜 고기반찬이 없느냐고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는 몇몇 손님들을 위한 멸치 구입이 전부네요.” 조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맛은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알아챈다. 이렇게 받은 인정은 이내 이웃주민들과 손님 간의 직거래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손님들은 싱싱한 농산물을 현지에서 직접 구매해 갈 수 있어 좋고, 이웃주민들은 정성껏 키운 작물들을 제 시기에 맞춰 판매할 수 있어 좋고, 저 역시 건강한 음식으로 찻집을 운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혜란 씨는 찻집을 열기 전부터 계획했던 아담한 공방 만들기에 다시 속도를 내 조만간 도예와 천연염색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귀촌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값진 경험들을 하며 살아가요. 건축가가 꿈인 아이 역시 대안학교를 다니며 알게 된 ‘스트로베일하우스’ 건축에 요즘 푹 빠져있어요. 저 역시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모두 흥미롭고 즐거워서 도통 헤어나올 수가 없네요.” ■ 전통찻집 ‘차 마실 산’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 내에 위치한 전통찻집으로 각종 유기농 음료와 정성으로 갓 지은 연잎밥이 일품이다. 마당 곳곳에 널린 들꽃의 이름을 알려주는 돌멩이 이정표가 정겨움을 더하고, 직접 나물도 따볼 수 있어 편안하게 머물수 있다. 033-241-6200 http://cafe.naver.com/chamasilsan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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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도예작가 이택민ㆍ강미화 부부의 그릇을 이루는 방, 이룸공방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도예공방 ‘이룸’. 하얀색 시멘트사이딩으로 곱게 옷을 입은 공방 안에는 그보다 훤씬 고결한 순백의 도자기들이 알알이 여물어 가고, 시간이 흐른 뒤 ‘백자’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누군가의 온기를 가득 머금은 채.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순백의 도자기를 구워내는 도예가 이택민. 평범한 이름 석 자에 도예가란 업을 얹게 된 건, 단순한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그 또한 자신이 흙을 빚게 된 계기를 지극히 일상적인 제안에서 비롯된 일이라 회상했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진로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죠. 그때 도자기를 전공하셨던 막내 이모께서 미대에 진학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더군요. 그래서 고2때, 난생 처음 미술학원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학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노량진. 또래 친구들이 제법 규모도 있고 수강생들로 북적이는 학원을 찾아다니는 동안, 택민 씨는 1층에 작은 한약방을 둔 미술학원에 멈춰 섰다. 미술학원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학원에 닿기 전 거치는 1층 한약방.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한약 냄새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다. “천천히, 느리게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시작을 위해 필요했던 건, 체계적인 미술교육보다 학원가는 길에 맡는 은은한 한약 냄새가 제겐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 냄새를 맡으며 내가 가야할 길, 잘할 수 있는 것, 진짜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곤 했지요.” 여러 전공 중에 도예과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졸업 후 첫 실전무대는 지금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파주 프로방스 마을의 도자기 공방이었다. 프로방스 마을 형성의 초창기 멤버였던 그는 5년 간 그곳에서 도자기를 구워냈다. 하지만 어쩐지 시간이 흐를수록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곳곳에 자리한 지인들의 작업실 한 켠에 머물며 작업해 보기도 했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작고 남루해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업실과 신념을 담은 도자기를 만들어야 할 때임을 스스로 자각했던 시점이다.도예가에게 치명적이던 3년의 시간 아내와 함께 이뤄낸 생애 첫 작업실 프로방스 공방에서 함께 일한 계기로 지금의 아내가 된 강미화 씨와 함께 1년간 작업실과 살림집을 함께 둘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이미 많은 도예가들이 상주해 있는 여주를 1순위로 꼽아오다 우연히 국도를 지나쳐오며 만난 경기도 양평의 한 마을을 보고선 생각이 바뀌었다. 조용하고 푸르른 산새도 일품이거니와 곳곳에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많이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선 마음을 굳혔다. 2007년 5월, 그렇게 1층에 공방, 2층에는 부부의 살림집 그리고 작은 텃밭을 둔 생애 첫 작업실이 완성되었다. ‘이루다’란 의미와 ‘이택민만의 방’을 뜻하는 ‘Room’을 더해 ‘이룸공방’이란 간판을 내걸고 잠시 멈추었던 작업을 다시 이어갔다. 그토록 염원했던 작업실을 가졌기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이러한데 몸이라고 가만히 둘 수 있었을까.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테이블과 의자, 수납장, 선반에 이르기까지 손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팔을 걷어 부쳤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싶었는데 마음이 너무 앞섰 던 걸까.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공방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던 중, 그만 톱날에 왼쪽 손이 심하게 베이고 말았던 것. 그 후 3년간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의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왔다고. “다시는 도자기를 빚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사고후유증 때문에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하지만, 묵묵히 제 옆을 지켜주는 아내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재활뿐만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아내를 통해 얻게 되었어요.” 이제 막 새살이 돋아난 그의 직업적 소명이 가장 먼저 다다른 곳 역시 흙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실 선반 가득 놓인 도자기들은 먼지 한 점 조차 닿지 않을 듯, 정갈한 선과 색을 담아내고 있다.다시 만지게 된 흙은 그를 살게하는 원동력이다.부부가 함께 완성해낸 공방 내부의 모습.요리전문가의 단골 그릇들. 명품 조연을 꿈꾸는 남자의 그릇 그 남자의 그릇에 매료된 사람들 도자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한없이 편안하다 못해 한 치의 꾸밈이 없다. 작품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비움의 철학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분청사기ㆍ청자ㆍ백자 가운데 유독 백자에 애착을 보이는 것 또한 이 이유에 속할 것이다. “저는 제가 만드는 백자 그릇들이 신주단지라도 모셔야 할 듯 작품으로 비춰지길 원치 않아요. 도자기는 본래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릇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백자는 드라마 속 명품 조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쓰이느냐’에 집중하는 것, 이게 좋은 그릇의 조건이 아닐까요.” 이택민 도예가는 일명, ‘실용그릇’을 지향한다. 그래서인지 그릇 종류들이 커피잔부터 와인잔, 접시, 찬기, 볼, 백자항아리, 오브제ㆍ램프ㆍ풍경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들 일색이다. 어떤 와인 전문가는 투명한 와인글라스 대신 이작가의 백자 와인잔에 로제 와인을 담아 즐겨 마실 정도라고 하니, 이쯤 되면 기존의 상식마저 깨뜨리는 이색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겉멋은 내려두고 백자 고유의 색감만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빚어낸 그릇들은 요리전문가들이 먼저 찾는 단골 그릇으로 요리전문잡지와 여성지에 꾸준히 등장했다. 그릇보다는 음식에 먼저 눈이 가는, 그가 지향하는 명품 조연다운 그릇에서 묻어나는 겸손이 음식을 먹는 이들에게 혹은 음식을 만드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 아닐까. 가마에 그릇을 넣을 때 마다 그는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된다.차곡차곡 도자기 익어가는 소리.일일도자기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진 한 컷. 그들만의 손으로 완성되던 백자 누군가의 손으로 재탄생되는 그릇들 쓰임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신이 연출되는 순백의 그릇들. 100%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해 완성되는 그의 그릇들은 최근 그러한 겉옷마저 과감히 벗어던졌다. 양평에 정착한 후, 도예가의 아내는 남편이 손바닥으로 빚어낸 하얀 그릇 위에 자신의 손끝으로 살포시 수를 놓곤 했다. 인위적으로 대상을 그려넣기 보다는 마치 봉숭아물을 곱게 들인 어린 소녀의 손톱을 보는 듯한 느낌을 연상시키는 붓터치로 그릇의 여백을 채웠다. 그 시작을 계기로 부부 이전에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동료가 된 이택민ㆍ강미화 부부. 이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파트너쉽을 살려 ‘백자’라는 것이, ‘도자기’라는 것이 결코 감상품이 아닌, 누구든 만들어 보고 활용할 수 있는 것임을 차근차근 일반에게 알려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일일 도자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부부와 함께 흙을 만지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그릇을 만들고 돌아갔다. “특별하진 않아도 한결 같은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부부가 가야할 방향인 것 같아요. 오래두고 보아도 그 자리에 있는 듯, 여러 색의 음식을 담아내도 늘 맛깔스런 그릇으로, 그렇게 정감 있는 백자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 도예공방 ‘이룸’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봉상리 387-10번지에 위치. 부부 도예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각종 생활그릇들이 한곳에 전시되어 주문 및 구입이 가능하다. 100% 예약제에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도자기 체험에는 초벌된 그릇에 그림을 그려 넣는 ‘핸드페이팅’, 직접 손으로 그릇을 만들어내는 ‘핀칭’, ‘물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031-775-8342 http://yiroomine.blog.me※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전원속의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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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본질이 아름다운 집을 짓는 SIE 정수진 건축가
과감한 매스에 선이 두드러진 디자인, 여성 건축가의 설계라고는 쉽게 짐작키 어려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정수진 소장. 하지만 그 면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디자인과 시공부터 마감에 이르기까지, 전체와 부분을 어우르는 섬세한 손길이 안팎에서 느껴진다. 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깊은 눈빛으로 교감하며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는 정수진 소장판교에서 소장님 모르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지금까지 판교에만 6채를 지었으니 그런 말도 들어보네요. 운이 좋게도 개소 후 첫 주택 작업에 좋은 건축주를 만났어요. 그때 지은 ‘하늘집’으로 동네에서 좀 알려지면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주택 설계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요공부할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주택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지금도 큰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거나 유명한 건축가가 되고 싶은 욕심보다는 재미있는 작업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특별히 주택이 흥미로운 이유라도 있나요건축은 건축주들의 이야기에 제 머릿속에 그려진 생각들을 접목해 가는 과정이에요. 특히 주택에는 건축주의 일상에 관한 진솔한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사람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곳이 집이잖아요. 다른 공간에서는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는 그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슬리거든요. 건축가로서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 쉽지 않은 작업이죠. 그래서 저는 주택을 잘 다루는 건축가는 직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10여 채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주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족들의 생활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그리고 건축적으로는 ‘자연과 집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대부분 아파트에 살았잖아요. 아파트는 분명 주택보다 살기 편리해요. 그렇지만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외부와는 단절되죠.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밖의 이야기예요. 주택은 그런 자연을 단도리를 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수단이지만, 대신에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물하죠.주택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은 주로 어떻게 풀어내나요흔히들 현관은 지면보다 어느 정도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실과 데크 사이에는 단차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비록 한 단차지만, 사람에게는 ‘경계’의 느낌을 주거든요. 저는 그런 경계를 없애려 노력해요. 창문에 기대앉아 손만 내밀면 바닥에 떨어지는 비를 만질 수 있는 것, 날씨 좋은 여름 날 문만 열면 데크가 거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서 경계를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해요.그런 장치들을 건축주가 쉬이 수긍하나요물론 싫어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럴 때는 ‘딱 두 달만 살아 보세요’라고 설득해요. 주택을 의뢰할 때 과도한 기대감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건축주들을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건축가는 건축주들의 그런 부분들을 조정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마당에 나무를 많이 심자는, 아주 바쁘게 생활하는 건축주를 힘들게 설득해 나무보다는 데크를 더 많이 만들어 드렸는데, 얼마 후 잡초 관리가 힘들어 주차장에 있는 잔디마저 돌로 바꾼 에피소드가 있어요.(웃음)그녀의 사무실에는 각종 타일과 마감재 샘플이 가득하다. 재료는 늘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며 고른다.그동안의 작업으로 ‘중정형 건축가’로 불리기도 하는데요판교 단독주택지에 지은 주택 모두가 중정형이었어요. 필지들이 인접한 택지지구이다 보니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프라이버시 침해가 불가피했거든요. 그래서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자연과 편하게 접하는 방식으로 택한 게 ‘중정’이에요. 중정은 외부로 난 창들을 최소화하면서도 내부 마당을 이용해 실내가 외부와 만나기 쉽게 하죠. 그래서인지 판교에 건축주들이 처음에는 “외관에도 창이 크고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시다가, 살아보면 “이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는 말을 종종 하세요. 그 모양이 비슷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혹자는 ‘늘 비슷한 유형의 주택을 복제한다’는 비난도 하는데, 주택에서 그런 건 불가능해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아파트처럼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을 입으려 건축가를 찾았으니 그들을 잘 표현하는 유일한 집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제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같은 거 다시 하면 재미없잖아요.거제도 바닷가에 자리한 ‘펼친 집’ 사진 남궁선중정을 만들 때 디자인 원칙 같은 게 있다면가장 중요한 것은 중정의 크기에요. 땅의 넓이와 건물 규모에 관한 비례가 적절하지 않으면 집이 아니라 감옥이 돼요. 특히 비싼 도심의 단독주택지는 땅은 좁고 필요한 집의 면적은 크니 건물이 커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정 비율 이상 안마당을 확보할 수 없다면 중정형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바깥으로 창이 없어 다소 막힌 느낌도 드는데요외관에 창을 절제하는 것은 덩어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 건축 어법이에요. 그걸 깨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노톤의 재료를 쓰는 거고요. 하지만 창이 늘 덩어리를 깨는 위해요소는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뿐이예요.사실 판교의 단독주택 설계 지침을 보면 건폐율, 용적률 말고도 담장이나 대문 등 여러 가지 규제가 있어요.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서 그런 지침이 있는 거라고 짐작하는데, 담장 없고 창 크다고 열린 집, 열린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집에서는 편하게 생활하고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마당을 통해 창 안으로 모든 게 훤히 보이면 편한 생활이 되겠어요? 마당을 즐기려고 만든 큰 창에는 밤낮으로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아야 하고, 낮 동안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창 마다 보기 싫은 경보장치를 덕지덕지 달아야 하지 않나요?담장 높다고 이야기 못 하고 대문 있다고 이웃 간에 왕래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건물 모양으로 개방과 폐쇄를 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능해야 하는 것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이 더 문제이니, 결국 그런 것까지 고려해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여성건축가 중 한 명이라서 작업에 이목이 집중됩니다순수한 작업 내용으로만 보면 건축은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주택에서는 안주인이 주인공 아닌가요? 그래서 여성 건축가가 설계를 하면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새는 가사분담을 공동으로 한다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여성 건축가가 주택에서의 삶을 배려하는 부분도 남다르죠. 남자들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여자라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나요작업 외의 부분이 버거울 때가 많아요.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것 같아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칠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격려해 주셨어요. “수진, 너는 좋은 건축가가 될거야. 그렇지만 여자라서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프랑스도 그렇거든.” 그때만 해도 체감을 못 했는데, 실제 일을 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설계 외적으로 힘든 부분은 뭐가 있나요아직도 우리 사회는 건축은 남자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거친 현장과 큰 돈을 관리하는 거잖아요. ‘여자가 과연 공사현장을 잘 통제할 수 있겠어? 여자인 네게 내 재산을 맡겨도 되겠나?’라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그래서 여성 건축가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으려고 더 정확하고 치밀하게 때로는 거세지는 것 같아요. 현장에 가면 시공사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보란 듯이 저희 직원들의 실수를 더 나무라는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하고, 정말 심각한 부분이 생기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몇 번이고 재시공하는 경우도 있어요. 건축가란 직업, 딸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습니까나중에 딸이 건축가가 되겠다면 말릴 거예요. 너무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근데 다음 생에 저보고 또 건축할 거냐 물으면 저는 할 것 같아요. 그림이 실물이 되어가는 걸 보는 건 정말 엄청난 희열이거든요.소장님의 작업을 보면 여자임을 잊을 만큼 과감함이 엿보여요원래부터 치장하는 걸 잘 못했어요. 그래서 학생 시절 오밀조밀 작업하는 선후배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그렇지만 나에게 없는 재능을 아쉬워해야 소용없고, 가진 걸 찾고 그것을 발전시키다보니 이런 건축어휘까지 온 것 같아요. 건축 또한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지만 궁극적으로 다시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죠.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기 위한 빈 곳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그 비어있음이 아름다운, 화장보다는 본판이 좋은 얼굴을 만드는 건축가이고 싶어요. 생얼이 예쁘면 화장을 할 필요가 없고, 화장을 하면 더 예쁠 테지요. 건축도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시겠지만 생얼로 예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웃음)본판이 좋은 건축이란 말이 참 와 닿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단 의미겠지요비싼 재료로 마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골격 자체가 좋아야 해요. 그게 바로 덩어리 자체의 비례감인데, 이게 제대로 되어야 재료들이 효과를 발휘해요. 뼈대가 잘못 되면 나머지 것들을 바로 잡는 데 비용과 노력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가끔 콘크리트를 붓기 직전의 거푸집이라도 잘못 되어 있으면 재시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설계한 집은 재료보다 인건비 단가가 더 비싼 편이에요.결과를 보면 쓰인 재료도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저는 저렴하고 보편적인 재료를 ‘잘’ 쓰는 데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 재료가 가진 물성이나 질감을 살려 개성있게 보이도록, 또 집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요. 그래서 중국에 재료를 찾으러 가기도 하고요.(웃음) 드라이비트나 컬러강판 같은 싼 재료를 외장재로 쓰기도 해요. 비싼 천을 사다 솜씨 없는 재봉사가 만들면 꽝이 되지만, 볼품없는 천이라도 솜씨 좋은 옷쟁이가 만들면 멋들어지잖아요. 저는 후자를 택하는 거죠.결과까지 좋은 집을 만들려면 설계뿐 아니라 시공도 중요하겠어요시공이 잘 안되면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무용지물이 돼요. 그림과 실물이 다르게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시공사 선정이 그래서 중요하고, 그런 이유에서 가능한 감리도 꼭 하는 걸 원칙으로 해요. 건축주가 시공사를 선정할 때 어떤 항목을 확인해야 하나요시공사가 지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지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좋아요. 이게 어렵다면 내 집의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주택을 시공한 곳을 찾는 겁니다. 첫째는 시공사의 주 시공 영역에 주택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주택은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성도 있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오피스나 아파트같이 다수가 사용하는 현장 전문 시공사는 주택 현장에 와서 엄청나게 고생해요. 단지 브랜드에 치우쳐 시공사를 선택한 후 서로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둘째로 시공사가 완공한 기존의 주택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봐야 해요. 같은 돈으로 90%를 만족시키는 업체가 있고, 70% 밖에 만족시킬 수 없는 업체가 있어요. 그게 시공사의 관리 능력이에요. 그런 다음에 받는 게 ‘견적’이에요. 앞의 두 조건에 부합하는 몇 업체를 선정한 다음 정확한 견적을 의뢰하는 거죠. 그런데 일반적인 관행은 앞선 두 전제조건을 확인하기도 전에 견적부터 받아보고 낮은 금액 순서로 결정하곤 하죠.견적이 합리적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요비슷한 능력의 업체들이 견적을 제출했다면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업체는 제외하고 평균치와 가장 유사한 금액을 제시한 곳으로 선정해요. 대신 각 업체의 특성과 그들이 제시한 조건 또한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싸게 들어온 견적가의 유혹은 뿌리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에 싸고 좋은 걸 만나는 행운이 그리 쉽게 오나요? 유통되는 자재와 인건비 등급이 어느 정도는 통용되고 있는 실정인데, 터무니없이 싸다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하자에 대한 불안감이 건축주들에겐 늘 있어요건축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 이 세 팀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해요. 그리고 팀 결성 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확함을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고요. 가끔 건축주가 현장에 들렀다 “고생하십니다”하는 격려와 함께 건네는 커피 한잔에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는 인부 아저씨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 분위기의 현장에서 어떻게 대충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못 믿으면 피부로 느껴져요. 내 집 지어줄 사람들이니까 서로 믿고, 참고,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집은 한 번 잘못 지으면 오랫동안 애물단지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현실적으로 건축주가 제일 힘들어져요. 돌이켜 보면 과정이 즐거웠던 현장이 결과도 좋더군요. 건축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건축주가 좋은 건축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대치에 최고의 가치까지 더해줄 수 있는 첫 번째 파트너가 건축가거든요. 건축주는 자신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왕이면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건축가를 찾는 게 중요해요. 건축은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건축주 본인이 디자인하고 현장에서 직접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겁니다. 건축가이든 시공자이든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즉, 설계가 의도대로 되었는지 그리고 공사감독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게 좋은 건축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축주의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활이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으로 보장되는 집, 판교에 들어선 주택 ‘White Cube Sugar’ 사진 남궁선SIE 건축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289 가든파이브 웍스 D-60102-575-6026, www.sie-jungsujin.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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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골목을 누비는 젊은 건축가 조한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endif] -->반짝이는 청년의 눈빛을 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뽐내며 도시를 누비는 젊은 건축가 조한. 블로그와 SNS로 사람들과 오랫동안 소통해 온 그가 얼마 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을 읽으며 마치 서울 골목길 안내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 책은 만들어놓고 보니 누구에게는 골목길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서울 역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들여다보면 제가 커온 이야기도 사이사이에 배어 있거든요. 사실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연히 만들어진 책이에요. 제 블로그와 SNS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던 생각을 본 CBS 교통방송의 요청으로 ‘도시는 살아있다’라는 코너를 진행한 것이 시작이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 곳곳을 누비며 공간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걸 진행하면서 어느 순간 ‘나에게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게 서울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편안한 도시거든요. 매주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면서 글감을 찾아다니고 글로 정리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의미를 정리해볼 기회가 오게 된 거죠. ‘건축은 왜 음악이나 영화처럼 감동이 쉽게 오지 않을까’라고 쓴 서문에 대한 답을 한다면감동의 원인은 ‘시간성’이라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든 장식이나 공예품을 보면 그게 뭔지 몰라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직관적으로 느껴지잖아요. 오래된 공간들, 예를 들면 유적이 주는 아련한 공간, 폐허가 된 옛 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시간이 그 장소에 감동을 더하는 거죠. 중정을 통해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갑자기 늘 보던 구름의 움직임이 생경하게 느껴지고, 산에서 담쟁이 넝쿨을 보면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공간사옥처럼 벽에 붙어 바람에 나풀거리는 걸 보면 또 다른 떨림이 느껴지는 것, 그런 장치들이 건축만의 ‘시간’을 담아내는 방식인 거예요. 골목길이 주는 의미도 같게 해석하면 될까요골목길이 가지는 매력 중 하나는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할 것 같은 기대감이에요. 미로 같고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요. 골목길은 특별한 시작점도 끝점도 없으니 최대한 걸을 때의 감각에 촉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목적에 집착하면 놓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어 서울부터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갔을 때, 그 중간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요. 건축가로서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사람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학자로서 학술적인 글을 쓰고 철학 명제같이 읽기 어려운 글을 썼는데,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장소를 소개할 때는 책이 아니니 그림을 하나도 보여줄 수 없잖아요. 목소리만 가지고 이끌어야 하니 그게 큰 어려움이자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새로운 과정이 마치 저에게는 골목길 투어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골목을 따라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 “이거 해보지 않겠어요” 제안해서 옆 골목으로 샜다가, 또 누군가를 만나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는 흥미로운 여정이요. 책을 쓰면서 계속 저 자신을 발견하고, 장소를 설명하다 보니 그곳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 기억이 옳은지 재차 확인하러 가면 또 다른 게 보이고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것 같아요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독특하게도 그 호기심의 대상이 저 자신이에요. 어디를 갔을 때 거기가 왜 그런지도 궁금하지만, 내가 왜 여기를 좋아할까? 혹은 싫어할까? 이런 거에 대해 스스로를 탐구해요. 이 습성이 제 행동을 관통하는 공통점인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이라도 있나요소위 말하는 교수톤을 걷어내려 애를 굉장히 많이 썼어요. 잘난 체하고 가르치려는 말투를 걷어내기 위해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고요. 원고가 일찍 끝나서 미리 정리해둔 챕터를 보면 아직도 그런 부분이 남아있어요. 마지막까지 악전고투하며 만진 글은 어느정도 그런 말투가 걷힌 것 같고요.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요 ‘공간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라는 걸 실마리로 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곳보다 자신이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장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요. 저는 제가 보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정말 무서운 건 감상을 통제당하고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건데 본인이 깨어있어야지만 돼요. 예를 들면 부엌 싱크대가 놓인 방식은 주부가 소외당하게끔 등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더욱 무서운 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습된다는 점이에요. 이 책은 집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좋고 나쁨을 스스로 찾으라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어요. 요즘 설계 작업은 뜸하신 것 같아요충남 공주에 마을회관을 1년에 한 채 정도 디자인해요. 지금 7채째 하고 있는데, 그것도 껍질을 깨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처음에는 건축가로서 마을에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분들한테는 이미 취향이 다 결정되어 있고 바꿀 일도 없어요. 그러면 이곳을 사용할 분들에게 맞춰주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평상시 건축주 설득할 때 효과적이었던 ‘자연을 끌어 들인다’는 말이 이분들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문만 열면 자연인데 무슨 소리냐!’ 이거죠. 중정, 천창 다 필요 없더라고요(웃음). 나는 내가 건축가라고 자부했지만 알고 보니 도시건축가였던거죠. 이제는 지방이라서 시공에 어려움이 있을 걸 고려해 디테일도 욕심부리지 않게 디자인하고, 페인트 색을 골라놔 봤자 벽지를 시공할 걸 뻔히 아니까 그것도 내려놨어요. 그러면서 아주 간단한 원칙만 가지고 작업을 해요.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와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구조 같은 것들이요. 뭐랄까, 해탈한 분위기인데요. 해보고 싶은 디자인이나 작업이 있을텐데욕심을 많이 버리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너무 많이 버렸는지 앞으로는 좀 거창한 디자인은 자신이 없어졌어요(하하). 앞으로는 집을 갖기 힘든 사람을 위한 집을 디자인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돈 많은 사람을 위한 저택 같은 집이 아니라, 잠시 지내는 간이주택이 됐든 조립식 주택이 됐든 저렴하고 살만한 집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요새 건축학과 학생들은 예전과 어떻게 다른가요10년 전과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건물보다는 그 지역에 내가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요. 예전에 비해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을 하려 애쓰고, 그러다 보니 작은 프로젝트가 많아요. 고시원, 작은 임대주택, 리모델링 비슷한 프로젝트, 한옥개조 등이요. 10년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대규모 공간을 제안하는 친구는 몇 안 돼요. 옛날 건축계는‘~~ 주의’같은 구심점이 있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그런 단어가 무색해진 듯해요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어떤 거시적인 미학의 헤게모니가 와해된 시대를 살게 된 것 같아요. 개중에는 그걸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각자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고 모든 상황에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대적 감성으로 바뀌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축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건축의 영역을 좀 더확장했으면 해요. 건축과를 나와 건물을 짓는 일로 스스로를 너무 한정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건축공부를 하고 다른 분야에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보는 눈을 가지고 다른 데 가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거죠. 일반 기업체라도 상관없어요. 인문이나 공대와는 전혀 다른 감성, 보는 눈을 가지고 있거든요.건축을 배운 사람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건축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저는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는 거라고 대답해요. 이 언어를 배우는 순간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거죠. 이 언어를 가지고 꼭 말할 필요는 없어요. 문을 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갈 가능성을 갖게 되는 거죠.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서 건축을 제대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글과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됩니다 사람은 혼자는 못 살잖아요. 항상 누군가를 위해 손을 뻗고, 더 많은 사람과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모두에게 있죠. 설계를 할 때도 물론 건축주는 한 명이지만, 설계자는 내 건물이 더 많은 사람들과 닿고 이야기했으면 하는 욕구가 있거든요. 저도 항상 그런 욕구가 있었고요. 어찌 보면 설계보다는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행복한 것 같아요. 집짓기랑 글짓기랑 말의 음률이 비슷하잖아요. 벽돌로 쌓는 집이나 글을 쌓아 짓는 글이나, 글과 설계, 교육 모두 다른 방식의 건축을 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아직 글을 쓰는 것만큼 설계 작업을 했다고 생각지 않아요. 설계는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갈 길이 아직 멀죠. 하지만 이것도 제게는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배움이 없는 순간은 아마도 호기심이 사라지는 때겠죠? HAHN Design 건축가 조한http://blog.naver.com/jluke313 jluke313@naver.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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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은재네 돌담집’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endif] -->한국농촌건축대전 본상에 이어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을 차지한 은재네 돌담집. 나와 내 가족이 살 집이 아니라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도서관을 지었다는 그 집엔, 도대체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초가집과 고택, 돌담이 있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신현민, 권윤자 부부와 딸 은재, 아들 우철이를 만났다.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endif]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새로 지은 도서관과 작업실. 그 사이로 은재네 초가집이 보인다.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endif]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경북 예천 금당실 마을에 가면 골목골목이 즐겁다.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보이는 초가집과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택의 정취가 가을내음과 어우러져 코끝을 간질인다. 마을로 들어서 가볍게 걷다 상쾌한 공기에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나면, 마을회관에 다다르기 전 은재네 돌담집을 만날 수 있다. 아담한 두 채의 목조주택은 새로 지은 집이지만 벌써 마을 풍경에 제법 자연스럽게 녹아난다.이곳엔 2년 전 귀농한 신현민, 권윤자 부부와 7살 난 딸아이 은재, 지난 8월 첫돌을 맞은 아들 우철이가 산다. 얼마 전 2014 한국농촌건축대전과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휩쓸었다는 목조주택은 한 채는 벌꿀 전시·작업실, 나머지 한 채는 마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으로 쓴다. 두 건물을 잇는 데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초록 잔디가 깔린 안마당과 초가집 두 채가 자리하는데, 바로 정면에 보이는 안채가 네 가족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별채는 민박집으로 쓰는데, 아직 정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동네 민박집에 남는 방이 없을 때 종종 소개받아 오는 손님이 있는 정도다. “도시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로선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윤자 씨가 두 사람의 고향인 예천으로 귀농하자 마음먹고 현민 씨에게 제안하게 된 데에는 은재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대구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줄곧 대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맞벌이였던 터라, 엄마·아빠가 모두 일하러 가고 나면 은재는 보모의 손에 맡겨졌고, 어린이집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보모나 퇴근한 부부가 데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아무도 은재를 데리러 가지 않은 일이 터졌다. 윤자 씨는 놀라서 부리나케 아이를 데리러 갔고, 은재는 모두가 집에 가고 딱 하나 불이 켜져 있는 방에 선생님과 단둘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그 일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그 길로 현민 씨가 1년 먼저 예천 부모님 댁에 내려와 양봉 일을 익히고, 그동안 윤자 씨는 혼자서 은재를 돌보며 일을 했다. 당장은 그게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엄마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 은재가 너무나도 힘들어했고, 아이를 봐주던 분까지 이사를 하게 되자 윤자 씨는 아이를 먼저 아빠가 있는 예천으로 보냈다. 그리고 한두 달 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윤자 씨까지 내려온 것이 귀농 생활의 시작이었다.“주말마다 시댁에 오가면서 이 동네가 참 좋았어요. 전통마을이라 매물로 나오는 집이 잘 없는데, 마침 초가집 두 채에 넓은 흙 마당이 있는 이 집이 나왔죠. 초가집이라도 잘 살면 되지,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큰일이더군요(웃음).”특히 초가집은 지붕을 매년 새로 이어서 얹어줘야 한다. 현민 씨는 벌들이 겨울을 나는 동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초가지붕을 잇는다. 손으로 새끼를 꼬아 초가지붕을 만들어왔던 마을 어르신들에게 전통 기술을 직접 전수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이은 전통 초가지붕이 주변 지역에 판매되기도 한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렇게 금당실 마을에 자리 잡는 동안 은재는 온 동네를 누비며 전보다 더 명랑해졌고, 작년 여름엔 둘째 우철이가 태어났다. 부부가 처음 이 집을 샀을 때, 집에는 ‘농촌 유학’을 온 아이와 엄마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후 1년이 조금 넘도록 이들은 별채에서, 은재네는 안채에서 함께 살았는데, 주말마다 내려와 머물다 가던 아이의 아빠가 바로 은재네 돌담집을 지어준 201건축사사무소 대표 현상훈 씨다. 집이 좁아 공간이 더 필요하다 생각하던 부부는 상훈 씨에게 ‘가시기 전에 집 한 채 지어 달라’ 부탁했다. 당시 부부가 요청한 것은 살림집이 아닌, 꿀을 포장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동네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으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은재가 보던 책이 많은데 이걸 혼자 보기도 아깝고, 둘째가 있어 어디 가져다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서관을 만들면 딱 좋겠다 생각했어요. 요즘 시골은 옛날과 달라서 아이들이 많지 않아 밖에 나가서 놀 때 걱정되기도 하고요. 또, 여기에선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려고 해도 춥거나 비올 땐 갈 데가 마땅치 않거든요. 그럴 때 이곳이 누구나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음 해요.” 벌꿀 전시·작업실 출입구벌집 쌓기한 벽돌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전시·작업실 내부볕 좋은 날, 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들 흙 마당이었던 곳에 자갈을 깔고 잔디를 심어 포근한 안마당을 만들었다.“은재가 보던 책을 동네아이들과 함께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곳이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음 해요.”작은 규모도 규모지만, 서울에서 예천까지 와서 작업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 탓에 처음엔 난감해 하던 상훈 씨는 취지를 듣고 나더니 단번에 승낙했다. 그 후론 상훈 씨가 예천에 내려올 때마다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작년 9월 공사를 시작해 12월 완공된 집이 바로 지금의 은재네 돌담집이다. 왜 너른 마당을 살리지 않고 집을 앞쪽에 앉혔을까 했는데, 윤자 씨는 덕분에 바깥마당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들릴 수 있고 가족에겐 아늑한 안마당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돌담을 터서 다시 이어야 할 부분도 있고, 조경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어요. 건축사분이 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벤치를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사소한 것도 꼼꼼하게 설계해주셨거든요. 마을과 집에 대한 애정이 넘치세요, 이게 누구 집인지 모를 정도라니까요(하하).” 마지막 남은 봉숭아 꽃잎을 따다 손톱에 물들이는 은재책장 가득 꽂힌 책, 커다란 테이블, 아이들 장난감이 있는 도서관 부부의 넉넉한 마음과 특별한 인연의 건축사가 만나 지은 집엔 늘 은재와 우철이, 동네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웃집 강아지들도 놀러 와 이곳에서 은재네 강아지 ‘율이’와 마당을 한참 뛰어다니다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과 ‘소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이모, 여기에 정말 예쁜 집이 있어요. 한번 가볼래요?” 금당실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소나무 숲을 지나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동안, 신이 나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은재의 표정에서 이곳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스스럼없이 길가의 방울토마토, 대추를 따 먹고, 다채롭게 피어있는 꽃들에 정답게 안부를 물을 줄 아는 아이다. 누나를 따라 뛰노는 우철이도 마냥 기분이 좋다. 그런 두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을 몰고 오는 늦가을 찬바람에 해가 저무는 저녁, 은재네 돌담집엔 늘 따스한 온기가 돈다. 은재네 돌담집 http://blog.naver.com/icingbrain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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